“그들은 강철, 불과 함께 왔지만 지푸라기보다 약했네.”
사라 자말의 귓속으로 꿈꾸는 듯한 선율이 흘러들어갔다.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공포로부터 그녀의 귀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것이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 폭격이 날아드는 공포스러운 밤마다 사라는 동료들과 함께 낭송하곤 했던 시 속으로 도망친다. 4년 전 아랍의 봄 시위는 ‘새로운 예멘’을 기대하게 했었다. 하지만 “전쟁은 다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예멘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놨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고통 속에 있고, 전쟁이 끝난다고 해도 이전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남부 아덴에선 빈병을 든 수천명의 주민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수도펌프에 줄을 서 있었다. 의사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하야트 알샤미리는 “식량이 너무 부족해서 아이들은 허기진 채로 잠든다”면서 “국제기구는 다 어디에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고한 시민과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예멘으로 오는 원조는 하나도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을 몰아낸 후티 반군과 친정부 세력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예멘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고 다친 곳을 치료할 길 없는 시민들이 절망 속에서 ‘인권 유린’을 호소하고 있다.
사나의 마즈라크 난민 캠프에서 부상자를 치료해 온 의사 히샴 압둘라지즈는 “어떤 전쟁에서나 사상자는 발생하지만 이곳에선 치료를 할 수가 없다”며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사나에는 먹을 것도 연료도 없어 많은 이들이 떠나버렸다. 밀 같은 필수 식량은 값이 두 배로 뛰었다”고 덧붙였다.
아랍권 최빈국인 예멘은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해서 쓴다.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배와 항공기 등의 운송 수단을 사용할 수 없으면 생존이 어렵다. 국제적십자사 대변인 마리아 클레어 페갈리는 “전쟁으로 병원들이 사라졌고, 하늘 길과 바닷길이 모두 막혔다”고 전했다. 적십자사는 의약품과 의료진을 파견할 준비를 마쳤으나 군이 공항을 장악해 예멘에 수송기를 착륙시킬 수가 없었다.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허가로 48t의 긴급 구호약품을 실은 수송기가 사나에 도착했지만 대기 상태다. 군은 “병참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유를 댔다.
유엔인도지원조정국에 따르면 의료봉사자들이 교전 지역에서 사망하거나 앰뷸런스가 군에 붙잡히기도 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도우니아 데킬리는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라면서 “각국이 외교관 등을 대피시킬 수 있게 한 것처럼 교전 지역에 인도적 지원도 허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예멘에서 지난달 19일부터 민간인 217명을 포함해 549명이 숨지고 1707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 74명의 어린이가 숨지고 44명이 장애인이 됐다.
한편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을 상대로 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공습에 파키스탄이 참여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국민의 80%를 차지하는 수니파와 20%인 소수 시아파 간 갈등이 벌어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하늘·바닷길 끊겨 구호 손길도 끊긴 예멘… 내전 격화로 민간인 희생 커져
입력 2015-04-08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