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방문한 일본의 도쿄 신주쿠구 요츠야에 위치한 한국음식 전문점 ‘처가방(妻家房)’. 1층에는 배추김치 동치미 깍두기 등 한국의 맛깔스러워 보이는 김치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그 옆에서 대여섯명의 일본인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김치 모형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김치박물관이기도 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하루에 100여명. 이곳에서는 평소 김치를 직접 담그는 수업이 진행되기도 한다. 2층 식당에서는 불고기 육개장 등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3명의 일본인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열심히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다.
‘처가방’ 오영석(63·동경희망그리스도교회 장로) 대표는 “잠언 16장 9절 말씀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죠. 전 패션공부를 하러 일본에 왔다가 김치를 팔고 알리는 일을 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처가방은 일본에서 한국의 김치와 가정요리로 꽤 유명한 한식당이다. 오 대표는 일본에서 22개의 처가방 본·지점과 백화점에 입점한 15개의 식품관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일본의 음식을 알리기 위해 일식당 ‘도쿄 사이카보’ 3개를 오픈했다. 일본어로 사이카보로 불리는 처가방은 푸짐하고 정성스럽게 차려낸다는 의미다. 최근 경색된 한·일 관계 때문에 사업에 타격을 받고 있지만 그는 한·일 간 문화교류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김치를 디자인하는 남자
젊은 시절 오 대표는 패션 디자이너를 꿈꿨다. 영남대 화학과를 중퇴한 후 조우선 디자이너에게 사사한 그는 6년 동안 ‘사라미’라는 의상실을 운영하다가 1983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도쿄 문화복장학원에서 패션유통을 공부했으며 87년 일본 게이오백화점에서 한국인 최초로 패션매장 직원이 됐다.
하지만 89년 막내아들의 돌잔치를 계기로 그의 ‘김치 인생’이 시작됐다. 식사 초대를 받은 일본인 동료들은 오 대표의 아내 유향희 권사가 만든 김치 갈비찜 제육보쌈 등 한국음식에 반해 버렸다. 4년 뒤 게이오백화점 측은 유 권사의 음식 솜씨를 믿고 한국식품 코너를 열자고 먼저 제안했다. 일본인의 반응이 좋자 오 대표는 아예 패션유통 일을 접고 93년 ‘처가방’ 본점과 백화점 식품 매장을 오픈했으며 96년 ‘김치박물관’을 개관했다. 음식 맛이나 건물 인테리어 디자인 분야 등에서 무척 까다로운 일본인의 눈높이에 맞춰 사업한 것이 처가방의 성공비결이다. 김치는 덜 맵고 달게 만들어 현지인 입맛에 따랐지만 가정요리는 한국 고유의 맛을 그대로 살려냈다. 일본의 전 수상 하토야마 유키오와 배우 초난강(구사나기 쓰요시)이 대표적인 처가방 단골이다.
김치로 선교하는 남자
“제가 26세 때 이런 기도를 했어요. 일본에 가도록 해주면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선교하겠다고요. 기도응답으로 6년 뒤 일본에 가게 됐지요.”
그는 서원기도대로 하나님을 위한 선교활동에 적극적이다. 동경성시화운동본부 회장인 그는 도쿄의 복음화를 위해 회원들과 정기적인 예배와 기도를 드리고 있으며 일본과 한국의 목회자 연합을 위한 선교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김치’ 관련 사업은 선교를 위한 재정적 발판이 된다. 20여년 동안 매월 50여 목회자 가정에게 쌀 20㎏를 전달하고 있다. 또 해마다 목회자와 처가방 종업원, 한국의 학생들에게 1억원에 가까운 장학금을 전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
최근 그가 맡은 또 다른 직함은 ‘신주쿠 한국상인연합회 회장’. 최근 일본군 위안부, 독도 등 역사 갈등으로 악화된 한·일 관계의 영향을 받아 50개 이상 업소가 문을 닫은 도쿄 신주쿠구의 ‘코리아타운’ 살리기에 본격 나선 것이다. 오 대표는 ‘한류’를 찾은 사람이 다시 이곳을 방문하도록 전략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가 많은 일을 기쁘게 감당하도록 해주는 원동력은 선교에 대한 열정이다. “우리 동년배들은 힘들게 살아왔죠. 재정이 없는 속에서도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있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가졌어요. 일본에는 신앙인들이 적습니다. 제가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은 일본인에게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는 계기를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도쿄=글·사진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
[미션&피플-‘처가방’ 대표 오영석 장로] ‘김치 선교’로 일본인 입맛·마음까지 쏙∼
입력 2015-04-08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