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정영택 목사)이 열정 넘치는 부흥사이면서도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고(故) 고영근 목사를 추모하고 나섰다. 예장통합 총회역사위원회는 7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에 고 목사 사료 특별전시관을 개관했다”고 밝혔다.
총회역사위원장 김동운 목사는 “고 목사는 하나님의 의를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불의와 싸운 성직자였다”며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가 사회정의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며 평생을 바친 고 목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1933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고 목사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집권자의 불의를 지적하는 설교를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두 차례 구속됐으며, 1980년 한국목민선교회를 창립한 뒤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예배와 호헌철폐를 위한 시국기도회를 여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고 목사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비전향장기수에게 성금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고 2002년에는 생활개혁운동본부를 창립해 십계명을 기초로 국민윤리를 확립할 것을 촉구하는 사역을 펼치다 2009년 별세했다.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는 “유명 부흥강사였던 고 목사는 1970년대 들어 부흥운동이 갈수록 기복신앙에 빠져들고, 한국교회가 교세확장에만 주력하자 세례 요한처럼 광야의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시국기도회가 아닌 부흥집회에서 독재정권을 지탄하고 복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다 투옥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공의로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른 참 성직자”라고 말했다.
사료는 고 목사의 사역을 위민(爲民·1954∼1968), 여민(與民·1968∼1975), 애민(愛民·1975∼2000)기로 나눠 전시된다. 위민 시기는 1957년 고 목사가 대전 성우보육원에서 한국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이를 돌보는 사진과 문서 14점, 여민 시기는 고 목사가 한국기독교선교회 총무로서 주도한 전국교역자수련회(1973년) 사진 등 사료 16점, 애민 시기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을 당시 작성한 옥중수기와 병보석으로 출감했을 당시 사진 등 사료 16점이 포함돼 있다.
한완수(79) 사모는 “남편은 천국에서도 한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소외된 이웃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랄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남편의 바람대로 날림교회가 아닌 건전한 신학을 추구하는 교회로 채워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글·사진=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故 고영근 목사, 민주주의에 헌신한 삶 한눈에
입력 2015-04-08 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