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고영근 목사, 민주주의에 헌신한 삶 한눈에

입력 2015-04-08 02:19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관계자들이 7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 마련된 고(故) 고영근 목사 사료 특별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정영택 목사)이 열정 넘치는 부흥사이면서도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고(故) 고영근 목사를 추모하고 나섰다. 예장통합 총회역사위원회는 7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1층에 고 목사 사료 특별전시관을 개관했다”고 밝혔다.

총회역사위원장 김동운 목사는 “고 목사는 하나님의 의를 이 세상에 구현하기 위해 불의와 싸운 성직자였다”며 “개교회주의와 성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가 사회정의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며 평생을 바친 고 목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1933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고 목사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 집권자의 불의를 지적하는 설교를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두 차례 구속됐으며, 1980년 한국목민선교회를 창립한 뒤 광주민주화운동 추모예배와 호헌철폐를 위한 시국기도회를 여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고 목사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비전향장기수에게 성금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고 2002년에는 생활개혁운동본부를 창립해 십계명을 기초로 국민윤리를 확립할 것을 촉구하는 사역을 펼치다 2009년 별세했다.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는 “유명 부흥강사였던 고 목사는 1970년대 들어 부흥운동이 갈수록 기복신앙에 빠져들고, 한국교회가 교세확장에만 주력하자 세례 요한처럼 광야의 길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시국기도회가 아닌 부흥집회에서 독재정권을 지탄하고 복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다 투옥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공의로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른 참 성직자”라고 말했다.

사료는 고 목사의 사역을 위민(爲民·1954∼1968), 여민(與民·1968∼1975), 애민(愛民·1975∼2000)기로 나눠 전시된다. 위민 시기는 1957년 고 목사가 대전 성우보육원에서 한국전쟁으로 고아가 된 어린이를 돌보는 사진과 문서 14점, 여민 시기는 고 목사가 한국기독교선교회 총무로서 주도한 전국교역자수련회(1973년) 사진 등 사료 16점, 애민 시기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됐을 당시 작성한 옥중수기와 병보석으로 출감했을 당시 사진 등 사료 16점이 포함돼 있다.

한완수(79) 사모는 “남편은 천국에서도 한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소외된 이웃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바랄 것”이라며 “한국교회가 남편의 바람대로 날림교회가 아닌 건전한 신학을 추구하는 교회로 채워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시회는 8월 31일까지 열린다.

글·사진=이사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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