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친박 의원이 전해준 얘기 한 토막. 이명박 대통령 시절 친박 핵심 의원들과 대통령실장 또는 수석비서관들 사이에 긴히 볼일이 생기면 만날 장소가 미묘한 문제가 됐다. 여의도에서? 광화문? 아니면 중간 어디 마포쯤? 누가 상대방 쪽으로 가느냐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는 것이다.
“MB정권 초반에는 청와대 측에서 잘 만나주지도 않았을 뿐더러 만나려면 당연히 광화문으로 가야 했다. 임기 중반이 되니 마포쯤에서 만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여의도 쪽에 가까워졌다. 대선 즈음해서, 인수위 때는 실장·수석들이 우리를 만나러 우르르 여의도로 왔다. 권력이 그렇더라.” 한 수 접는 쪽이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는 게 권력의 역학관계다. ‘품위’ 있는 정치에서나, 조폭 세계에서나 권력 구조의 본질은 같을 게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의 레임덕 수준을 측정하는 현상일 수도 있겠다.
취임 한 달이 좀 넘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행보는 이에 비하면 파격이다. 신임 인사차 방문 외에 벌써 여야 원내 지도부에게 밥을 산 곳은 여의도의 고깃집과 중국집이었다. 조윤선 정무수석은 물론 장관급인 김관진 안보실장까지 배석시켰다. 전임 김기춘 실장은 딴판이었다. 여당 대표까지 만날 수가 없다고 불평했을 정도였으니.
비서실장이 취임하자마자 자청해 여의도로 가 밥을 산 것은 정권의 힘이 빠져서일까, 아니면 전략적 유연성일까. 이를 레임덕 징후라고 해석하는 것은 좀 무리인 것 같다. 대통령은 아직 행사할 권한이 막강하고, 그게 때론 정치인 개개인에게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다. 정치가 그랬다. 그보다는 전임자의 부정적 그늘을 거둬내려는 이 실장의 유연함과 순발력, 소통력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비서실장이 바뀌니 대통령 메시지가 조금 달라졌다는 얘기도 나오던데 정말 맞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무튼 충성에도 질(質)이 있다는데 그 말은 맞는 것 같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이병기와 김기춘
입력 2015-04-08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