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유난히 떠오르는 선생님이 있다. 그는 시를 가르쳤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처럼 사과를 들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것을 보고 만지고 무엇이 느껴지냐고 물었는데, 신입생이었던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사과를 처음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그는 지금까지 봐왔던 것이 전혀 다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해 날마다 생각하라 하셨다.
선생님은 봄이 오면 졸고 있는 우리를 깨워 바람결을 맞으러 나가셨다. 우리는 풀밭에 앉아 선생님이 읽어주는 어느 시인의 시를 바람소리와 함께 들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으셨다. 잠시 후 나무의 소리가 들리느냐고 물으셨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그것이 진짜인 것처럼 느껴졌다.
졸업 무렵, 선생님이 유난히 지쳐 보였다. 평온한 미소가 사라졌고 수업 중간에 자주 길 잃은 얼굴을 하곤 했다. 무엇인가로 고통받고 있는 듯했다.
꽤 시간이 흘러서도 나는 이따금 선생님께 수업 때 들은 것들을 문자로 묻곤 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이다. “울고 싶을 때 시인이 갔다던 화장실이 어디에요?” “선암사란다.” “왜 그곳에서 울고 싶었을까요?” “직접 가서 보고 느낀다면 알게 되지 않을까?” 질문은 다른 질문을 낳았고 선생님은 서정적인 답장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직접 만나 뵀을 때 나는 그 시절 선생님의 고통에 대해 물었다.
“소중한 사람이 아팠단다.”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나는 고통의 본질이 궁금했다. 믿음직한 사람조차 무너뜨릴 수 있는 무엇, 그리고 고통을 지나간 사람의 모습.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대면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차근히 그때의 고통과 지나온 시간을 이야기해주셨다. 들으면서 나는 그 아픔이 오히려 선생님을 성장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이야기하는 동안 선생님이 웃으셨다.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고통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선생님이 다시 웃으셨다
입력 2015-04-08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