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갈등을 넘어 치유로-릴레이 인터뷰] ② 카이스트 재난학연구소 박희경 소장

입력 2015-04-07 02:33
박희경 카이스트 재난학연구소장이 지난달 30일 대전시 유성구 연구실에서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한 해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이동희 기자

“재난은 작은 과오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 결과물입니다. 세월호가 전형적이죠. 배를 불법 개조하지 않았다면, 과적하지 않았다면, 화물을 제대로 결박했다면, 방향타를 급격하게 틀지 않았다면, 관제소가 일찍 발견했다면, 해경이 훈련돼 있었다면…. 이 같은 수많은 ‘∼했다면’이란 후회가 세월호 참사에 쌓여 있어요.”

박희경 카이스트 재난학연구소장(건설·환경공학과 교수)은 세월호 참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재난학연구소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설립됐다. 카이스트 교수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여러 학문에 흩어져 있는 재난 부분을 융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재난에 취약한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안전한 사회로 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게 목표다. 지난달 30일 대전시 유성구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만난 박 소장은 “작은 과오들이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중간에서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아직 반성하지 않았다”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다시 일어날까. 이런 초대형 재난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리고 아픔과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인터뷰에서 던진 질문은 여러 갈래였는데, 박 소장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철저한 반성’ 하나였다. “어린 학생 수백명이 죽어간 대참사를 겪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반성했는지 각자 성찰해 보길 권한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면 철저한 반성이란 무엇일까. 그는 미국 ‘9·11테러’를 예로 들었다. “미국 뉴욕에 있는 9·11추모관에 가본 일이 있다. 인상적인 건 타임라인이었다. 분초 단위로 9·11 테러를 세밀하게 재구성해 놨다. 어떤 정부 부서가 이때 어떤 일을 하고 있었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미국의 반성문’인 셈이다.”

그에게 세월호를 반성한다는 건 당시 매순간 우리 사회의 모든 잘못을 낱낱이 찾아내는 일이다. “예를 들면 출동했던 해경이 제대로 된 장비가 없었고 훈련을 받지 못했다. 당시 출동한 사람들의 장비와 훈련 책임자는 누구였는지, 예산이 없었다면 예산당국과 국회는 무엇을 했는지, 역대 기관장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을 전부 들춰내야 한다. 세월호를 둘러싼 모든 영역에서 이런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 성역은 없어야 한다.”

재난을 연구한다니 물었다. 세월호 같은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박 소장은 ‘하인리히 법칙’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대형 재난이 한 건 일어나려면 동일한 원인으로 경미한 사고가 29차례, 징후가 300차례 발생한다는 게 하인리히 법칙이다. 수많은 징후와 사고에서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제거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싱크홀 때문에 도로가 내려앉아 트럭이 뒤집어지고 물건이 파손됐다면 ‘사고’다. 그러나 공교롭게 통학버스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위험한 도로를 미리 찾아내 그 길로 아이들이 다니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이를 위해 여러 분야에 흩어져 있는 재난 연구를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재 선진국인 일본에서는 도쿄대 등 명문대학 3곳에 핵심 재난연구소를 두고 방재를 연구하고 있다. 이곳에서 실용적인 사회기술시스템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도쿄도 등에는 상수도 시설에 수동 펌프를 설치했다. 지진이 나면 화재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데 수동펌프로 비상시에 식수도 공급받고 불도 끌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개발시대 인프라, 계속 문제 일으킬 것”

우리 사회는 개발시대에 깔아놓은 인프라가 하나둘씩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빨리, 많이, 싸게 지어온 결과다. 최저가 입찰제가 이를 상징한다. 인프라 확충에는 돈을 많이 썼지만 유지·관리에는 인색하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싱크홀이다.

“하수관을 묻을 때 제대로 공사를 한다면 침수에 대비해 단계별로 단단하게 땅을 다지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냥 묻어버리고 한꺼번에 덮어버렸다. 하수관에서 물이 새면 도로가 밑으로 꺼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놨다.”

박 소장은 화장실 휴지통도 예로 들었다. 그는 “다른 나라는 쓰고 난 화장지를 변기에 버리도록 하는데 왜 우리는 ‘휴지통에 버려 달라’는 문구가 있을까. 공사를 잘못했거나, 오래됐거나, 관리를 제대로 못해 막힐까봐 이렇게 써놓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모든 인프라가 똑같은 처지”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는 인프라를 깔던 시기보다 사회 규모가 훨씬 커졌다”며 “몰리는 사람도 훨씬 많기 때문에 재난이 일어나면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도로·항만 같은 하드웨어 인프라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얼마 전 인천 영종대교에서 106중 추돌사고가 있었다. 관광버스 운전자의 과속이 사고 원인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곤 전광판 같은 걸 설치하고 마무리됐다. 운전가가 왜 과속을 했는지, 누가 운전자를 과속으로 내모는지 등의 사회경제적 관점은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 그는 “이런 식이면 대형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소장은 해법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안전 기준을 대폭 높이라는 것이다. 지금 기준을 강화하면 20∼30년 뒤 우리 아이들이 혜택을 본다는 논리다. 그는 “과거 개발시대에 아무렇게나 지어놓고 이제 와서 고치려 하니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면서 조마조마하게 사는 것”이라며 “지금 돈 아끼자고 후세에 이런 부담을 떠넘겨서는 곤란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취약 요소들을 찾아 고쳐나가는 작업이다. 사회 곳곳에 잠재된 부실은 ‘엎질러진 물’이다. 꾸준하게 과거 잘못을 찾아내 수정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박 소장은 “정부가 바다에서 사고 났을 때를 대비해 해양 구난용 로봇을 만든다고 하는데 막대한 돈을 들인 로봇들이 고철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이런 방식으로는 재난을 막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 입맛에 따라 ‘3년 내’ ‘5년 내’ 이렇게 진행되는 개선책으로는 시설물 몇 군데 고치는 게 고작일 것”이라며 “앞으로 30년간 기본적인 안전을 다져나간다는 각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