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두노총과 수북청년단, 머리 싸움?

입력 2015-04-07 02:20

지난해 여름 서울의 한 약재시장에서는 때아닌 어성초 품귀 사태가 벌어졌다. 한 한의사가 케이블 방송에서 “어성초와 자소엽 등을 발효시켜 만든 발모팩이 탈모에 놀라운 효능을 보였다”고 말한 직후였다.

얼마 뒤 이 한의사가 해당 발모팩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발모팩을 바른 뒤 머리가 더 급격히 빠졌거나 지루성 두피염이 생겼다며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급기야 지난 1월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방송에 대해 “근거가 전혀 없는 치료법”이라며 방송통신위원회에 심의 신청을 했다.

‘어성초 사태’는 조기 탈모로 고민하는 젊은층이 크게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탈모를 걱정하는 세태가 확산되면서 하나의 희화화된 문화로까지 자리 잡았다.

6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9년 18만명이던 탈모 환자는 지난해 21만명으로 5년 새 15% 늘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10∼30대였다. 탈모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가 대부분이어서 실제 환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전체 탈모인 수가 10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본다. 올 상반기 모바일 네이버에서 ‘탈모’를 검색한 횟수는 2010년 하반기 대비 9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대머리’ 검색도 8배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달라진 식습관과 환경 등을 원인으로 꼽지만 유전 외에 탈모의 원인은 밝혀진 게 없다. 이렇다보니 비싼 시술을 받을 여력이 안 되거나 탈모약 부작용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은 고통에 시달린다.

온라인 탈모 커뮤니티에서는 자조적인 유머도 나온다. 최근엔 ‘민두노총’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민주노총을 패러디한 말로 미용업계에서 쓰는 대머리 마네킹 ‘민두’에 노총을 합했다. 사람 얼굴의 측면을 상징화한 민주노총 로고에 머리가 벗겨진 모양을 합성해 로고도 만들었다. 머리숱이 많은 사람은 ‘수북 청년단’이라 부른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란 영화 대사로 유명한 탤런트 김광규씨가 탈모를 겪고 있는 점을 이용한 온라인 놀이도 등장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뭔가 글을 올린 뒤 “여기에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란 댓글을 달지 않으면 당신도 김광규씨처럼 머리가 다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는 식이다. 이런 글에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란 댓글이 꼬리를 무는 진풍경이 연출되곤 한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