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오종석] 서울 ‘모델쇼’와 벤츠의 자존

입력 2015-04-07 02:34 수정 2015-04-07 10:25

우리나라 역대 최대 규모의 ‘2015 서울모터쇼’가 공식 개막된 지난 3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전시관을 찾았다. 서울모터쇼조직위원회 측의 ‘품격 있는’ 모터쇼 약속을 확인하고 싶었다. ‘모델쇼’라는 과거의 모터쇼 비판에서 벗어나길 기대했다. 김용근 조직위원장은 지난 2월 기자회견을 통해 “도우미(여성 모델)가 주연이 되고 자동차가 조연이 되는 행사가 되는 것은 지양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모터쇼가 열리는 제1전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각 전시관에서는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소위 ‘포즈모델’인 여성 모델들의 요염한 몸짓이 현란했다. 아찔한 미니스커트, 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옷차림도 여전했다. 전시된 차량보다 그 옆에서 이상야릇한 포즈를 취하는 여성 모델에게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집중됐다. 제2전시장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국산차는 물론 폭스바겐, 포드, 아우디 등 해외 유명 자동차 전시관도 대부분 한결같았다. 섹시한 레이싱 모델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극소수 남성 모델들이 눈에 띄기도 했지만 관심 밖이었다. 세계 첫 공개 신차 57종 등 차량 370대가 대거 출품됐다고 하는데, 분위기는 어떤 여성 모델이 더 섹시하냐에 맞춰진 듯했다. 역시 이번 모터쇼에서도 주연은 자동차가 아니라 여성 모델이란 느낌이었다.

주연은 여전히 차가 아니라 여성 모델

일부 모델들은 관람객과 함께 기꺼이 사진촬영을 하고, 셀카를 찍어주기도 했다. 제1전시장 닛산 전시관. 달라붙은 미니스커트에 가슴이 보일 듯 말 듯 섹시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여성 모델과 사진을 찍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친구와 함께 줄을 서서 결국 여성 모델과 사진을 찍은 이모(16·고1)군은 얼굴이 잔뜩 상기됐다. 그는 "레이싱 모델을 보려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이곳으로 향했다"면서 "내일 친구들에게 자랑해야겠다"고 떠벌렸다. 한 40대 주부는 "자동차보다는 여성 모델이 더 부각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가족이 같이 보기에는 좀 민망할 것 같다"고 말했다. 불과 몇 시간 전 김 위원장이 개막식 인사에서 "우리 생활의 동반자인 자동차를 가족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무색했다.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이번 모터쇼에 동원된 여성 모델은 250여명, 남성 모델은 1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한 포즈모델에게 지급하는 일당은 평균 50만∼70만원. 최고 모델의 경우에는 200만원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모터쇼를 앞두고 좀 더 섹시한 여성 모델을 영입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벤츠 전시관은 차로 승부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제2전시장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전시관은 완전히 달랐다. 고급스러운 차량만 선보일 뿐 여성 모델은 물론 남성 모델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석에서 차량 설명을 하는 세련된 여성 안내원만 있었다. 벤츠 관계자는 "차보다 모델에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에 2009년부터 포즈모델을 아예 쓰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며 "세계 최고의 차로 승부를 걸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모터쇼는 다양한 신차와 신기술을 감상할 수 있는 자동차 업계의 축제다. 미국과 유럽 등 모터쇼에서는 섹시한 여성 모델을 거의 세우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이달 말 열리는 상하이모터쇼에서 모델 출연을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5대 자동차 강국이다. 현대차 등 국산차는 벤츠, 아우디, 도요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모터쇼에서는 여성 모델 상품화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니 창피한 일이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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