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땀과 눈물, 피로 세워진 기독교

입력 2015-04-07 02:55

죽음을 앞두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첫 번째 행동은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이 눈물은 ‘땀으로 시작하여 눈물로 진행하여 피로 마치시는’ 예수님의 일생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키워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땀 눈물 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땀으로 얼룩진 30년입니다. 문헌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모는 비참할 만큼 가난했고, 열세 살이 됐을 때 아버지 요셉은 세상을 떠나고 예수님은 졸지에 6남매의 가장이 됐다고 합니다. 혼자가 된 어머니를 모시고 6남매를 부양해야 했던 예수님은 가업인 목수의 일을 하느라고 땀으로 얼룩진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땀의 30년은 신학적으로 깊은 뜻이 있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을 보면 ‘땀’은 범죄를 저지른 인간에게 주신 형벌입니다. 예수님이 땀으로 범벅이 된 30년을 사신 것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신 예수님이 철저하게 인간과 같이 되셔서 죄를 지은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형벌까지 남김없이 다 받으셨다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눈물로 얼룩진 공생애 3년입니다. 왜 성경에는 예수께서 우시고 눈물 흘리신 것만을 여러 번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이 눈물로 얼룩진 3년이었음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예언자 예레미야의 눈물과 비슷합니다. 백성들의 비참한 종말을 내다보는 예레미야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예레미야애가 1장을 보면 파괴와 살육의 현장을 직접 보는 예레미야의 눈물을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 성벽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시고 우시는 예수님의 심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앞으로 몇십년 후 정말 돌 위에 돌 하나도 놓이지 않고 다 무너질 이 아름답고 화려한 도성을 생각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신 것입니다. 또한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시며 통곡의 간구를 드리신 것입니다(히 5:7).

셋째, 피로 얼룩진 고난의 1주일입니다. 예수님의 땀도 귀하고 눈물도 귀하지만 ‘피’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주간 한 주간은 십자가와 피의 1주일이었습니다. 구약 레위기의 말씀처럼 ‘피는 곧 생명’이기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지만 ‘생명의 부활’로 마감하셨습니다. 그렇게 해 주심으로 우리들의 주홍같이 붉은 죄가 사해지는 새 역사가 일어나게 됐습니다. 비겁했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두 다 피로 그들의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초대교회 이후로 순교자들의 수가 3000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인류 역사와는 또 다른 별도의 ‘피의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엊그제 부활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흘리신 그 땀과 눈물, 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차원에서 예수님과 깊은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안성삼 광주 혜성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