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중국에서는 일본에 원정까지 가 비데를 싹쓸이하는 쇼핑이 논란이 됐었다. 엔저 현상에 일본 여행을 늘린 중국인들은 전자상가가 밀집한 도쿄 아키하바라 지역을 돌았다. 단연 인기 품목은 비데였다. 관영 CCTV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실은 버스 10여대가 다녀가면 비데는 모두 품절이 될 정도였다”고 전하기도 했다. 일본을 혐오한다면서도 일본 제품에 열광하는 중국인들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진부한 주장도 나왔다. 1980년대 ‘코끼리밥솥’을 사들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던 우리의 모습이 스쳤다.
지난달 초 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도 ‘일본 비데’가 화제로 올랐다. 리커창 총리는 정협 분임토의에 참석했다. 사오치웨이 전 국가여유국 국장은 일본 비데 열풍을 거론하며 “중국에서도 비데는 생산된다”며 안타까워했다. 리 총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소비자들은 제품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서 “중국 기업들이 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낸다면 최소한 중국의 소비자들이 비행기표는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데 논란 속에서 나타난 고급 제품에 대한 소비 욕구는 중국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중국인들의 소비 수준이 향상되면서 최고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있으면 그저 감사히 쓰던’ 그런 중국인들이 아니다. 수요가 있다면야 기업가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수요에 맞는 고급 제품을 생산하려 들 것이다. 정부가 뒷받침만 해준다면 금상첨화다. 중국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중국 제조 2025’가 바로 그것이다.
리 총리의 전인대 정부 업무보고에서 처음 언급됐던 ‘중국 제조 2025’는 공업 선진국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개념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산업화와 스마트화의 융합을 통해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최근 차세대 정보기술(IT), 고정밀 수치제어기와 로봇, 항공우주 장비 등 10대 육성 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 등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중국정부는 또 하나 기존 제조업에 인터넷 기술과 플랫폼을 접합해 육성하는 ‘인터넷 플러스’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2025년 제조업 강국으로 발돋움한 뒤 2035년에는 독일과 일본을 추월하겠다는 게 중국정부의 야심 찬 목표다.
한국도 지난해 6월 ‘제조업 3.0’이라는 큰 그림을 발표했었다. 2024년까지 수출 1조 달러를 달성해 제조업 세계 4강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리고 최근 그 실행 계획도 발표했다. 제조업과 IT를 접목해 제조업을 혁신하겠다는 방향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10년 뒤 두 나라가 설정한 목표 시점에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4억명에 육박하는 중국의 광대한 소비 시장, 그리고 넘쳐나는 돈을 가지고 퍼붓고 있는 기술 투자를 감안하면 중국이 앞설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는 59조3009억원(2013년)이고,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1조3300억 위안(약 234조3590억원, 2014년)이다. 중국이 한국의 4배 가까이 된다. 우리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규모가 4%를 넘어 세계 1위라고 자랑만 할 때가 아니다. 멀리서 바랄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국의 기업과 정부의 분발뿐이라는 게 안타깝고 불안하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특파원 코너-맹경환] 일본 비데에서 본 중국 제조업
입력 2015-04-06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