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가 남자를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이 말은 말쑥한 ‘영국 신사’ 스파이를 등장시켜 성공한 올해 최고의 흥행작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명대사다. 매너 없는 영국 신사란 상상할 수 없다. 문화인류학자 케이트 폭스는 ‘영국인들은 당신과 부딪혀 하수구로 굴러 떨어지면서도 당신에게 사과를 할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영국 신사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체 평가는 박하기 짝이 없다. 수필가 로버트 린드는 “영국인이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무능할 때, 그는 소득세 신고서에 스스로를 ‘신사’라고 쓴다”고 했다. 조지 오웰은 “영국인은 상습 도박꾼이고 월급을 털어 맥주를 마시며 음담패설을 일삼는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셀프 디스’에도 이유는 있다.
영국인들은 축구장 난동꾼인 훌리건으로 악명 높다. 또 유럽에서 여름 휴가철 음주 사고를 일으키는 관광객은 십중팔구 영국인이라고 할 만큼 폭음으로 유명하다.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 ‘더 선’은 매일 한 면 꽉 차게 여성의 상반신 누드 사진을 싣는다. 이렇게 본능에 충실한 독자가 260만명이 넘는다. 의회에서 의원들이 발언할 때면 서로 야유하기 바쁘고, 총리가 나오면 야유는 더 커진다. 아니, 매너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케이트 폭스는 책 ‘영국인 발견’에서 신사와 야수를 오가는 ‘영국인스러움’에 대해 영국인들은 태생적인 ‘사교불편증’ 환자라고 분석했다. 남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예절을 차리다가 축구나 날씨 이야기, 술의 힘을 빌려 증세가 호전되면 역으로 시끄럽고 폭력적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배우 숀 코너리를 닮은 주인집 존 아저씨는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는 건 한국 사람들이 영국에 대해 갖고 있는 고맙지만 큰 오해”라고 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인간의 양면성을 다룬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영국 소설이었다.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
[한마당-권혜숙] 킹스맨, 영국신사
입력 2015-04-06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