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진애] 뭐 심으셨어요?

입력 2015-04-06 02:20

“올해 뭐 심으셨어요?” 이즈음 참 하기 좋은 말이다. 다른 인사말보다 백배천배 기분이 좋아지는 말이다. ‘식목일’ 행사가 없어진 대신 사월은 뭐든 심는 달이 되었으니 그 기분이 오래 가서 더 좋다.

나무나 꽃을 심는 것보다 먹을거리를 심는 게 최고다. 나무를 심으면 미래가 그려지고 꽃을 심으면 내일이 그려지지만, 먹을거리를 심으면 일 년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삼월에는 ‘흙심’ 돋아주기, 사월엔 씨앗 틔우기와 모종 심기, 오월엔 솎아주기, 유월엔 순지르기, 칠팔월엔 따주기와 김매주기, 구월엔 화창한 하늘 아래 익어가기, 시월부터는 걷어주기, 십일월엔 온갖 채소과일 말려주기, 그리고 겨울엔 따끈따끈한 아랫목 즐기기, 일 년 열두 달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서 어느 한 달도 먹거리가 빠지지 않는다. 요렇게 무쳐먹고 조렇게 담가 먹고, 이렇게 삶아먹고 저렇게 구워먹는다. 어느 한 달도 허투루 볼 시절이 없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누구 손길도 다 쓸모가 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어르신들은 뿌듯해 하신다.

도시텃밭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모든 시민들이 “올해 뭐 심으셨어요?” “씨앗 나눠 드릴 게요” 하게 되기를 진정 바란다. 이렇게 생활에 뿌리내리면, 귀농이 되었건 청년 벤처가 되었건 멋진 농부들이 성공할 기회가 많아질 게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일감이자 새롭게 태어나야 할 일감이다.

독일의 생태도시, 프라이부르크에는 동네마다 작은 광장이 있는데 점심시간 전후가 되면 도시 농부들이 카트를 끌고 나와 채소와 과일을 판다. 매일매일 수확한 것을 팔 수 있으니 먹고살만하다. 그만큼 수요가 있다. 이렇게 된 것은 농부 이전에 시민들의 먹거리 의식 덕분이다. ‘제철 채소, 제철 과일을 먹는다, 온실보다 노지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 냉동 음식은 사절이다’ 같은 문화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대형마트에 가서 와르르 사와서 냉장고에 엄청 재두는 것 자체를 ‘불건강하고 비문화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발상이 변화되는 시점에 있는 것 아닐까. 텃밭은 그 시작이다. 이번 사월엔 뭐든 심자!

김진애(도시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