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제 건축가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 “건축물은 과거 기억보다 미래 창조하는 이미지가 중요”

입력 2015-04-06 02:03
지난 3일 광주광역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국제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한 스페인 건축가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 그는 “9월 개관 때 건축 전시 큐레이터를 맡았다”며 “프라다 도쿄 매장 등 유수의 건축물 모형을 통해 건축이 사회·경제·환경적 요소와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계되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의 대표작 ‘요코하마 국제 여객 터미널’ (1995∼2000년)
알레한드로 자에라-폴로(52)는 스페인 출신의 국제 건축가다. 세계 도시 곳곳에 그가 설계한 건축물이 포진해 있다. 1995년 국제 공모 당선작인 일본의 ‘요코하마 국제 여객 터미널’은 건축사에 획을 그었다는 극찬도 듣고 있다. 터미널 지붕을 인근 공원과 연계시켜 잔디와 데크가 어우러지게 꾸민 이 여객 터미널은 유선형의 외관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설계 툴을 적용시킨 첫 사례라는 평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9월 개관을 앞두고 지난 3일 개최한 국제포럼 참가 차 방한한 그를 현장에서 만났다.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 ‘광주 폴리(장식적 건축물)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광주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아시아문화전당 공모에 참여했다가 낙선했다. 당선작인 우규승 건축가의 설계는 어떤가.

“(지하에 구조물을 만들어) 지붕을 공원화한 게 특히 마음에 든다. ‘요코하마 여객 터미널’도 비슷한 콘셉트 아닌가.”

-옛 전남도청 자리에 만들어졌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본거지인데 그걸 살렸다고 보나.

“옛 도청 건물 일부를 보존하지 않았나.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건축물이 반드시 구체적 상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과거사보다는 아시아 전체로 나가는 미래적 이미지를 구현하는 게 더 중요하다. 수년 전 뉴욕 9·11 테러로 파괴된 ‘그라운드 제로’의 설계 공모에 지원했다 떨어진 적이 있다. 그 때도 같은 상황이었다. 뉴욕 시민은 기념비적 건축물을 원했다. 나는 이에 회의적이다. 과거에 대한 기억보다는 미래에 질문을 던지는 건축물이 바람직하며 문화전당은 그런 사례다.”

-발표한 주제가 ‘글로벌 시대 건축 생산 생태계’인데.

“건축은 에너지 소비적이다. 옛날에 사용한 돌, 나무, 흙 같은 건축 재료는 자연에서 나온 것이지만 현대 건축 재료인 알루미늄, 유리는 생산하는데 에너지가 사용된다. 그래서 집을 짓는 과정은 과거와 달리 환경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뿐만 아니라 건축은 정치·경제·사회와도 연계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은 티타늄 외관을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분위기를 낸다. 이게 가능해진 건 구소련 붕괴 덕분이다. 티타늄은 우주·항공분야에 쓰였던 값비싼 소재였다. 미·소 군비경쟁이 사라지며 가격이 폭락해 건축 재료로 쓸 수 있게 됐다.”

-포럼 주제가 ‘글로벌 아시아 건축’이다. 아시아 건축에 공통적 특징이 있나.

“흥미 있는 주제다. 외관에서는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며 한국과 일본의 건축물이 비슷해진다. 아시아 건축물은 유럽·미국과도 서로 닮아간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선 집이 남향, 북향이냐에 대한 관심이 강박적일 정도로 강한 것 같다. 같은 아파트, 같은 층인데 남향이냐 북향이냐에 따라 집값 차이가 난다. 뉴욕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아파트가 타워처럼 위로 올라가는 데는 그런 요인이 있어 보인다. 중국 일본도 비슷해 아시아의 현대 도시에서는 타워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반면에 유럽에서는 높은 층에 사는 걸 무서워하며 선호하지 않는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동양의 건축은 서양에 비해 자연의 요소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렘 콜하스 등 명성 있는 건축가의 작품이 뉴욕, 베이징, 서울 등 세계 도시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지역성에 대한 고려 없이 작품이 반복·이식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어떤 건축가들은 브랜드 정체성을 갖기 위해 도시가 달라도 같은 스타일을 반복하기도 한다. 내 건축 철학은 다르다. 건축은 그곳의 기후, 경제, 고객, 커뮤니티와 연계돼 있다. 모든 건축물은 그 나름의 생태계를 갖고 있다. 대표작 중 하나가 ‘요코하마 국제 여객 터미널’이지만 제2의 요코하마 여객 터미널을 만들고 싶지 않다. 모든 건축물이 달라야 한다는 게 내 이상이다.”

광주=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