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퇴임한 호세 무히카(80) 전 우루과이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혹은 검소한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정작 가난하다는 느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정말 가난한 사람은 화려한 생활을 유지하느라고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월급의 90%를 기부하는 등 그의 검소함에 관한 에피소드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행복에 관한 철학은 우리에게 생소하다. “어떤 물건을 살 때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그 돈을 벌려고 소비한 인생으로 사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무히카는 2013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중의 빈곤 해결이라는 주제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 전체 인류가 평균적 미국인처럼 살려고 한다면 지구가 3개나 필요하다”면서 “하나의 생물 종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파멸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2012년 6월 리우+20 회담에선 이렇게 말했다. “무자비한 경쟁과 무한 소비에 근거한 경제체제 아래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자는 논의를 할 수 있습니까? 지구를 손상시키는 것은 과소비와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화입니다. (…) 근본적 문제는 우리가 만든 사회 모델이며 반성해야 할 우리의 생활방식입니다.” 그의 정치적 비전은 ‘고루 가난한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무히카의 환경사상은 중남미의 작은 국가들에서 부활하고 있는 안데스 지역 토착전통과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2011년 ‘부엔 비비르(Buen Vivir)’-좋은 삶에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를 명기한 새 헌법을 통과시켰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자연을 법적 권리의 주체로 인정한 ‘어머니 지구법’을 제정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2007년 상당한 석유가 매장돼 있는 야수니 국립공원의 채굴을 금지하는 계획을 짰다.
우리나라에서도 무히카의 어록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이 SNS를 달구고 있다. 우루과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무히카 평전 ‘조용한 혁명’의 한국어판이 4월 중 출간된다고 한다. 판권 경쟁이 불붙어 선인세가 6000만원 이상으로 치솟았다니 ‘정신적’ 지도자에 대한 갈증을 보는 듯하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호세 무히카와 ‘부엔 비비르’
입력 2015-04-04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