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빼 바지·실경산수·대나무 숲… 무한 변신 ‘한국화’ 방향을 묻다

입력 2015-04-06 02:05
홍지윤의 ‘애창곡’ 설치 전경. 작가는 “오방색은 모니터의 컬러라는 점에서 현대적”이라고 말한다. 문화역서울284 제공
곽훈 작가의 ‘점’. 한지를 이어 붙인 게 텐트 같다. 날씨에 따라 팽창했다가 수축하는 물성에서 한국성이 느껴진다.
경성의 귀부인들이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었다는 ‘부인대합실’. 그 공간을 꽉 채우듯 차지하고 있는 건 한지로 만든 거대한 가림막 같은 설치작품(5×6×3.5m)이다. 바닥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서니, 2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안온하다. 한지를 이어붙이고 대로 살을 만들어 천장에 매달았다. 원로 서양화가 곽훈(74)의 설치 작품 ‘점’이다.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30일까지 ‘한국화의 경계, 한국화의 확장’전이 열린다. 우종택 전시감독은 지난 1일 “한국화란 무엇인가, 보다 정확하게는 현대에서 한국화란 무엇인가 물음을 던지는 전시”라고 말했다. 흔히 한국화는 한지에 그린 수묵화쯤으로 이해된다. 이런 정의는 국가 간,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요즘의 포스트모던한 시대에서 보면 고답적이다.

곽 작가는 “한국적인 것 하면 떡과 김치를 떠올린다. 그런데 세계로 나가려면 떡과 김치로는 안 된다. 세계에 더 유명한 것은 추잉껌이었다”면서 “다시 말하면 섞어야 길이 나온다”고 했다.

한국화의 방향에 질문을 던지는 이번 전시에 한국화 뿐 아니라 서양화, 사진, 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 29명 작품이 선보이는 이유다. 출품작 100여점은 옛 서울역사의 1, 2층 공간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한국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해석을 탐색한다.

조선 백자를 아취 있게 담은 사진(구본창), 한지에 아크릴로 그린 실경산수(박병춘), 농촌 할머니들의 생활복인 꽃무늬 ‘몸빼 바지’와 ‘아줌마 T’를 그려 넣은 병풍식 그림(이종구), 숯가루로 그린 대나무 숲(이재삼)…. 이들 서양화가들의 작품에서 한국적 체취를 느끼는 건 어렵지 않다.

한국화의 확장도 다채롭다. 경험한 산수와 상상의 산수를 디지털프린트로 표현한 ‘산수유람기’(임택), ‘윌리를 찾아라’식의 수묵 산수(유근택) 등이 그런 예다.

보다 과감한 방식으로 ‘한국화’를 재해석한 것은 설치 작품들이다. 홍지윤(46) 작가는 시서화의 전통을 어떻게 현대화할지 고민하고 사랑 타령의 통속성 짙은 노래가사에서 답을 찾았다. 여성의 손거울을 형상화 한 총천연색의 알록달록 천 풍선에는 춘향가의 사랑가 노랫말이 쓰여 있으며 전시실에는 작가가 부르는 ‘님은 먼 곳에’가 흘러나온다.

1925년 준공된 옛 서울역사는 화강암과 나무바닥, 커다란 창 등이 그대로 보존돼 전시하기가 쉽지 않다. 배경이 너무 강해 작품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디스플레이의 힘이 발휘됐다. 적절히 활용한 가벽은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한편 서로 다른 주제를 분리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귀빈실에 전시된 김태호(62) 작가의 단색조 작품들은 가벽을 절반만 세워 원래 있던 짙은 자주색 커튼과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벽난로 속에도 작품을 비치하는 등 원 공간이 갖고 있던 건축적 요소를 끌어들인 것도 눈길을 끈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