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한국사 교과서 수정명령은 적법”… “천안함 피격 주체 북한 명시 필요”

입력 2015-04-03 02:43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부’ 같은 표현은 자극적이어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싣기에 부적절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한국사 교과서 저자들이 교육부의 교과서 수정명령에 반발해 낸 소송에서 나온 판결이다. 좌편향 교과서 논란까지 빚었던 이 사건에서 법원은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모두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해당 교과서들은 이미 교육부 명령대로 수정된 상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경란)는 2일 6개 교과서의 집필자 12명이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천안함 사건의 주체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교과서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천안함 사건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경색됐다’는 문장 앞에 ‘북한에 의해’ 발생했다는 부분을 추가토록 한 건 정당한 명령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에 의해 발생한 것은 역사적 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학생들에게 전달해야 진정으로 북한과의 대립을 극복하고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 무리한 외자 도입이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는 문장을 수정케 한 것도 정당하다고 봤다. 이 문장은 ‘지나친 외자 도입은 안정적인 기업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했다’로 변경됐다. 외환위기 부분이 삭제된 것이다. 재판부는 박정희 정부와 1997년 말 외환위기의 시간적 간격이 18년이나 된다고 했다. 그 사이 세 정부가 존재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확장됐다고 봤다. 1960∼70년대 경제성장의 부정적 측면을 주로 기술한 교과서도 긍정적 측면을 추가토록 수정하는 게 맞는다고 판단했다.

‘피로 얼룩진 5·18 민주화 운동’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다니’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부’ 등의 소제목도 모두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소제목들은 교육부 명령 이후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다’ ‘극단으로 치닫는 강압정치’ ‘전두환 정부, 국민 저항에 직면하다’ 등으로 수정됐다. 재판부는 “해당 소제목은 신문기사 등에 사용됐었고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지나치게 자극적인 면이 있어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품위와 품격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1987년 전두환 정부 시절 박종철군이 고문을 받다 숨지자 경찰이 발표한 내용이다. 최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당시 고문 경찰을 수사하는 사건에 참여했던 전력 때문에 논란을 빚고 있다.

재판부는 이밖에 한국전쟁 당시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소개한 교과서에 북한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도 추가돼야 했다고 봤다. 북한 주체사상을 서술하면서 북한 주장을 그대로 소개한 부분도 수정돼야 했다고 판단했다.

승소한 교육부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미 수정된 교과서가 발간돼 있어 일선 학교에도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육부의 수정명령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을지는 미지수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2013년 11월 내려진 수정명령을 두고 ‘물타기’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빚었던 교학사 교과서 논란을 덮으려고 다른 교과서까지 수정토록 명령했다는 것이다. 당시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 대한 사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교육부가 검정 교과서 수정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수정명령으로 촉발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검토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