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라이브러리’는 벤처기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모여드는 장소다. 3∼6개월 머물면서 창업을 준비한다. 목적이 같은 이들이 한데 모이니 자연스레 토론이 이어지고, 서로의 창업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준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받기도 한다. 프랑스인 제레미(31)씨와 요하임(27)씨가 그랬다. 이들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제작하는 3D 프린팅 업체를 찾아 유통까지 책임져 주는 벤처기업 ‘피자테크(Pzartech)’를 만들어 지난해 8월 라이브러리를 찾았다. 이곳에서 법률 자문을 해줄 수 있는 동료를 소개받았고, 지난달 초에는 여기서 얻은 정보를 통해 유럽연합(EU)의 벤처투자회사로부터 12만 유로(약 1억5000만원)를 투자받기도 했다. 라이브러리를 거쳐 간 이들의 70% 정도는 실제 창업에 성공했고, 모바일 광고측정 분야의 선두기업인 앱스플라이어(AppsFlyer)도 이곳 출신이다.
◇이스라엘 벤처, 어떻게 성공했나=텔아비브 시에서 운영하는 라이브러리는 벤처창업가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인적 네트워크는 이스라엘에서 벤처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인맥을 공유하면서 벤처 성공 가능성을 높여갈 수 있었던 것이다. 텔아비브 시는 외국인들의 아이디어도 활용하기 위해 스타트업 비자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스라엘이 벤처의 성지로 자리 잡기까지는 민간의 역할도 컸다. 벤처가 성장하기 위해선 적어도 3년 이상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여러 해 동안 한 벤처에 지원금을 몰아주기가 어려울 뿐더러 가능성 있는 벤처를 가늠하는 능력에도 한계가 있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초반까지 정부 주도로 정책자금을 지원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벤처 생태계에 보조를 맞추기에는 여력이 부족했다. 지금은 정부가 후방에서 연구·개발(R&D)비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투자기업 발굴 등 세부 지원은 민간이 맡고 있다. 민간 투자자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 지원하는 셈이다.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창업 후 3∼4년간 이어지는 ‘죽음의 계곡’을 지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가 탄탄하니 창업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원동력은 위험 요소가 있더라도 과감하게 시도하는 문화다. ‘후츠파’(Chutzpah·대담함)는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이스라엘의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라이브러리 운영자인 리오르 크렌젤씨는 “이스라엘은 스타트업 창업을 도와줄 실력 있는 멘토와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꺼이 실패를 감수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모험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벤처창업가 교육기관인 스타타우의 설립자 오렌 시마니안(33)씨는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시작하라”며 “실패하더라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뛰어난 기초과학도 성공비결로 꼽힌다. 원천기술을 토대로 한 벤처가 많다보니 다른 기업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기술력으로 국제 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벤처 자리 잡으려면 위험 기피현상 극복하라”=우리나라 정부도 벤처 활성화를 위해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최근에는 판교의 창조경제밸리를 ‘한국형 실리콘밸리’로 육성 중이다. 각 대학 학과가 한데 모인 공동캠퍼스나 연구소가 있는 혁신교류 공간을 조성해 이스라엘처럼 젊은 인재들이 첨단기술이나 혁신 아이디어 등을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가 많다. 전문가들은 벤처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기업만을 선호하는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혁진 한국산업기술대 창업지원단장은 창업을 준비하던 청년들이 대학 졸업 시점이 되면 대부분 대기업으로 눈을 돌리는 원인으로 인재들의 ‘위험 회피현상’을 지목했다. 그는 “창업에 관심을 갖던 청년들의 95% 이상이 결국 취업을 선택한다”며 “젊은 시절 위험을 안고 벤처를 시작하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한 잠재적 경제 손실도 무시할 수 없다. 사업화할 경우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 자체의 가치를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용희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면서도 돈이나 기술력이 부족해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많다. 벤처는 초기 투자보다도 장기투자가 중요한데 정부는 오랜 기간 꾸준히 지원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벤처를 육성하게 되면 정부 지원금에만 의존하게 되고, 지원금을 노리고 ‘가짜 벤처’를 세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창업에 실패해도 그 경력을 인정해주고 포용해 주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정부는 이를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제고하기 위한 평가 모형을 개발하는 중이다. 김태현 벤처스퀘어 공동대표는 “스타트업에 실패하더라도 가능성이나 가치를 존중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텔아비브=글·사진 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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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강국 이스라엘] 텔아비브 ‘라이브러리’서 3~6개월 모여 아이디어 공유
입력 2015-04-03 0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