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지(聖地)인 이스라엘 땅엔 또 하나의 성지가 있다. 벤처산업이 그렇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체험한 뒤 초기 기독교 발전의 일대 스타트업이 일어났듯 이곳 이스라엘에선 매년 6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생기고, 이들에겐 연간 3조원이 넘는 투자가 쏟아진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다국적 기업에 인수·합병돼 벌어들이는 돈만 한 해 8조원을 넘어서고, 연간 수출액의 50%가 이런 첨단 기업에서 나온다. 벤처는 인구 800만명에 땅덩어리도 한국의 경상도 크기에 불과한 이스라엘의 생존전략이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성장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으며 청년백수가 48만4000명에 달하고 있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2013년 4분기 이후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용과 성장이 동시에 멈춰버린 것이다. 더 이상 대기업에만 의존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정부가 찾은 돌파구는 벤처다. 특히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동시에 새로운 국가 성장동력으로 자리잡길 기대하며 청년 창업을 위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 결과 각 대학 창업동아리 수는 2012년 1222개(1만8027명)에서 지난해 2949개(2만9583명)로 급증했고, 관련 학과도 13곳에서 21곳으로 늘었다.
문제는 벤처에 대한 관심은 늘고 있지만 실제로 창업에 도전하는 청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김태훈(가명·29)씨가 그랬다. 김씨는 2013년 7월 친구와 함께 벤처사업에 뛰어들었다. 스마트폰 속 사진을 사용자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자동으로 분류해주는 앱을 만들기로 했다. 이들은 석 달 후 ‘벤처의 산실’인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아이디어가 실제 상품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였다. 한국에 돌아와 상품 개발에 주력했지만 당장 투자자를 찾는 일부터 벽에 부닥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스며들었고, 제대로 된 직장에서 월급 받길 원하는 부모님의 요구도 부담이 됐다. 벤처를 시작한 지 1년여가 지난 지난해 10월, 김씨는 회사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꿈 많던 김씨의 벤처 도전기는 거기까지였다. 새로운 ‘취업전쟁’이 시작됐고, 김씨의 사업 아이템은 조용히 사라졌다.
대한민국에서 벤처가 정착하기 위해선 정부 정책을 넘어서는 사회 분위기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젊은 벤처 사업가를 육성하는 스타타우의 설립자 오렌 시마니안(33)씨는 “벤처사업에서 99%가 실패하고 1%만 성공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며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한국의 벤처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용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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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벤처로 몰려드는 이스라엘 청년들… 한국은? 벤처 꿈꾸다 결국 ‘취업 전쟁’ 내몰려
입력 2015-04-03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