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정보’ 증거능력 강화 추진] 법원 엄격한 잣대에 위기 의식 작년 11월 ‘증거법 연구회’ 조직

입력 2015-04-03 02:46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에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열쇠는 오로지 ‘증거’다. 형사소송법상 증거를 제시·입증할 책임은 공익을 대변한 검사에게 있고, 증거의 증명력을 결정하는 건 법관의 자유판단이다. 검찰은 전문증거(傳聞證據·간접적으로 법원에 보고된 증거)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법원의 태도가 지나치게 엄격해지고 있다며 ‘좋은 증거법’의 필요성을 토로한다.

이때 ‘좋은 증거법’이 법원의 영장주의를 뜯어고치자는 건 아니라고 검찰은 강조한다. 검찰 관계자는 “검사들이 힘들어하는 건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수집한 증거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인권침해를 피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는 증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원의 벽=검찰은 지난해 9월 한 판결을 두고 “형식논리만 강조되고 실체적 진실은 뒷전으로 밀린다”고 반발했다. 법원이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간첩 사건의 피고인 홍모씨에 대해 자필 진술서와 반성문의 허위 가능성을 언급하며 무죄를 선고했을 때였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1월 공안부를 중심으로 ‘증거법 연구회’를 조직, 법 개정 건의를 위한 첫걸음을 뗐다.

하지만 법원의 벽을 실감하는 사건은 또 일어났다. 지난 1월 법원은 ‘변혁의 새시대를 열어가는 교육운동 전국준비위원회(새시대교육운동)’의 이적단체 구성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이 제출한 이메일과 자필메모 2500여건은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피고인이 “기억이 안 난다”며 기재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 검찰은 “판사가 아닌 피고인이 재판을 하는 격”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기억이 안 난다”는 피고인 진술을 높이 사는 법원을 비판하는 건 검찰만이 아니다. 지난 2월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1심에 비해 더 많은 트윗 증거를 인정, 원세훈 국정원장의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유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상식적’이라며 환영했다. 당시 민변은 “누가 봐도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1심에서는 ‘구체적 작성자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는 국정원 직원의 법정진술만으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1심에 비해 훨씬 더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던 계기”라고 논평했다.

◇미국 증거법은=증명력 논란을 낳는 증거들은 주로 컴퓨터 등에 저장했다가 수사기관에 압수된 디지털 증거다. 대법원에 따르면 컴퓨터에 입력해 기억된 문자정보나 출력물에는 전문법칙(전문증거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원칙)이 적용된다. 압수 후 조작 가능성이 있고, 반대신문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디지털 증거가 이 전문법칙에서 예외로 인정되는 범위가 좀 더 크다. 미국 연방증거규칙은 피고인이 원진술자인 경우라면 디지털 증거라고 해서 모두 전문증거로 보지 않는다. 전문증거 예외로 인정되는 디지털 증거에는 피고인이 작성하거나 포워딩(전달)한 이메일, 피고인의 웹사이트에 게시된 사진과 텍스트, 피고인의 직원들이 제삼자에게 보낸 자술 이메일 등이 포함된다.

증거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과정에서도 양국 간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필과 서명, 날인, 원진술자의 인정 등이 있어야 증거의 진정성이 인정된다. 반면 미국에서는 진정성 인정 방법이 상대적으로 다양하고, 일정 부분은 배심원의 판단에 맡기기도 한다.

이경원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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