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발목 잡는 비싼 땅값의 역설

입력 2015-04-03 02:50
웨어러블 기기와 가상현실 등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전 세계 젊은이들이 다시 앞 다퉈 모여들고 있다. 하지만 다 오지는 못한다. 특히 가난한 젊은이들이 그렇다. 비싼 주택 월세 때문이다. 유망한 사업이 있을 때 아이디어가 풍부한 외부인들이 쉽게 유입될 수 있어야 더 번창할 수 있지만 지금은 비싼 임대료가 그런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때 생산의 3요소(토지·노동·자본)로 불리며 자본주의를 꽃피웠던 토지가 요즘에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발전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땅의 역설’이라고 했다.

전 세계 대도시의 비싼 임대료는 비싼 토지가격에 기인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토지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과도한 ‘건축 규제’를 꼽았다. 고도제한이나 용적률 제한 등으로 수요에 부응할 만큼 집을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토지의 희소성은 커져 가격은 점점 더 치솟고 그런 토지에 집을 지으면 결국 비싼 임대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체 부동산 가격에서 규제비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워싱턴DC와 보스턴은 20%,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맨해튼은 50%에 달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시에 창타이 시카고대 교수와 엔리코 모레티 버클리대 교수는 실리콘밸리에서 과도한 건축 규제가 풀리면 지금보다 최소 5배 더 발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전체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이 많게는 13.5% 포인트 상승하고, 미국민 1인당 연수입도 1만 달러(1100만원)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코노미스트는 과도한 건축규제에 따른 혜택을 지주들이 독차지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규제는 지주들의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반대로 규제가 완화될수록 주택 및 오피스 임대료가 내려가 개인들이 혜택을 보고, 기업의 1인당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농업생산성이 올라갔을 때 토지 임대료가 싸져 지주들의 혜택이 줄어들었듯 지금은 (용적률 확대 등을 통한) 토지생산성을 높일 때”라고 제안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