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독거 할머니가 ‘도박 하우스’ 운영?

입력 2015-04-03 02:45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지하 1층 A할머니(72) 집은 동네 ‘사랑방’이었다. 가족이 없는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 50년 넘게 살아왔다. 음식 솜씨가 좋아 이웃들에게 밑반찬을 해주며 얼마씩 사례비를 받곤 했다. 반찬값과 기초생활수급비로 월세 45만원과 생활비를 충당했다. 주로 무료한 동네 노인들이 반찬 사러 자주 왔고 자연스레 노인들의 놀이터가 됐다.

그렇게 이웃 노인들이 모이고, 다른 동네 친구들까지 데려오면서 ‘화투’를 찾는 사람이 생겨났다. 누군가 “치매 예방에 좋다”며 점당 100∼200원 고스톱을 제안한 게 화근이었다.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화투판이 열리더니 어느 새 고스톱에서 ‘도리짓고땡’으로 종목이 바뀌고 판돈도 커졌다. 점당 1만원을 넘어서기 일쑤였다.

한번에 20명 이상 찾아와 북적이기도 했다. 대부분 60세 이상 노인들로 일용직 노동자거나 은퇴자, 주부들이었다. 쌈짓돈을 들고 와 4∼5시간씩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할머니는 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주거나 밥을 해주며 사례비를 받았다. 망을 보는 ‘문방’이나 돈을 빌려 주는 ‘꽁지’는 없었지만, 일종의 ‘도박 하우스’가 돼버린 것이다.

이 도박판은 결국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상습도박개장 혐의로 A할머니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직접 도박한 22명도 붙잡아 조사 중이다. 이들에게서 압수한 판돈은 모두 760만원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할머니 집이 전형적인 하우스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은퇴 후 마땅한 소일거리가 없던 노인들이 쉽게 도박에 재미 들렸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