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달자] 프리지어 꽃

입력 2015-04-03 02:20

딸이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 왔다. 식탁에 놓으니 집이 환하다. 밤에도 낮에도 전등불 같은 따뜻함이 느껴진다. 밖은 꽃들이 피어나 거리를 환하게 하지만 아직은 집 안에 두는 꽃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나는 꽃을 자주 사는 편이다. 내가 사는 집 앞에는 언제나 꽃을 두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눈길을 주게 하였다. 꽃은 혼자 보는 게 아니다. 함께 보고 함께 웃어주는 것이 꽃에 대한 예의다. 꽃을 바라보면서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아주 옛날 고향 마당 뒤편은 화려한 꽃밭이었다.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한바탕 싸움이 지나가고 나면 어느 시간엔 아버지가, 어느 시간엔 어머니가 그 꽃밭에 서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화를 다스리느라 그 꽃밭에 계셨다는 것을 내가 남편과 싸우고 나서 알았다. 내가 마흔쯤 우리 집에는 오십여 평의 정원이 있었다. 집 안이 바위에 짓눌린 듯 무거워지면 때로는 남편이 그 정원에 서 있고 그가 들어오면 내가 그 정원에 서 있었다. 자신을 견디느라 남편과 나도 그 정원이 어머니 같은 곳이었다.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 목련과 모란이 피어나는 그 정원에서 참 오랫동안 눈물을 견디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만 시끄러워도 정원에만 나가면 어머니의 쓰다듬는 손길이 있고 함께 웃어주는 어머니의 미소가 있었다. 그 정원을 떠나왔지만 그래서 아파트에서 빌라에서도 살았지만 언제나 꽃을 안고 살았다. 산다는 것은 견디는 일이다. 그 견디는 힘을 나는 참 많이도 꽃에 의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는 그를 반려라고 하지만 나는 꽃이 반려다. 너무 시간이 짧다고 친구는 말하지만 꽃이 피려는 준비기간에도 몽우리로 바스스 얼굴을 내밀려는 순간에도 개화에서 지는 과정이 다 인생사다.

꽃이 지고 그것을 쓰레기 봉지에 담을 때도 한바탕 나에게 행복을 안겨 준 그 사랑 때문에 빈자리를 견디어 낸다. 고맙다고 말하면서. 기다림을 배우면서. 지금은 꽃의 계절이다.

신달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