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한국의 문화유산] 세종의 엄친왕자 광평대군의 묘

입력 2015-04-03 02:10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8호 광평대군 묘역. 필자 제공

세종도 공부 잘하는 왕자를 더 예뻐했다. 왕자들 18명 가운데 발군은 5남인 광평대군(廣平大君, 1425∼1444)이었다. 신도비에 엄청난 엄친아로 나온다. 수업에 게으르지 않아 ‘효경’ ‘사서삼경’에 능통했으며, 음률과 산수는 물론 문장과 서법도 뛰어났다. 헌걸찬 외모에 신체가 건장했고 활도 잘 쏘았다. 성품은 관대하면서 부드러웠고, 강하면서 온화하였다. 효성과 우애가 넘쳤으며, 노복까지 성의로 대해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였다.

그러나 일찍 비극이 닥쳐왔다. 만 19세 때 마마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조야가 슬퍼하였고, 세종은 상심하여 사흘간 조회를 열지 않았다. 다행히 궁중에서 기른 총명한 손자 영순군(永順君)의 후손은 번성하였다. 지금 전주이씨 종파 중 효령대군파 다음으로 자손이 많다.

광평대군 묘는 서울 남쪽 광수산에 있다. 강남 수서동 삼성병원 남쪽 기슭이다.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로 이룬 연못에 왜가리가 찾아든다. 양지바른 12만평 산지에 후손 묘소 700여기가 가득해서 아름다운 도심 속 공원처럼 보인다. 숙종 21년(1695)에 세운 세장기비는 왕손 가묘의 규모를 전해준다. 경내에는 종회당과 19대손 이규명(62)씨가 사는 종가가 있다. 매년 음력 3월 15일 제향에는 세종 18남의 후손들이 함께 참례한다. 최성자(문화재청 문화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