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믿음을 증명할 차례다’.
이렇게 막막한 요구가 있을 수 있을까요.
믿음이 ‘릴케의 장미꽃’이라면 그 꽃을 꺾어 질문자에게 바치고 입증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말씀’이니 그 귀한 말씀을 상대 손에 쥐어 주어도 믿질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신 그분의 아들 예수와 성령을 믿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공허(창 1:1)를 이적으로 채운 판타지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심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무신론자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는 어느 네티즌의 한 줄 평처럼 ‘크리스천에 의한, 크리스천을 위한, 크리스천의 영화’입니다. 19세기 말 ‘신은 죽었다’고 선포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무신론적 삶을 정리한 이 말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살가죽을 파고든 먹물 문신처럼 좀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혜는 현대과학에 뿌리를 두고 바벨탑을 쌓고 있는 셈이지요. 그 인본에 바탕을 둔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외치며 교만을 낳습니다. 허무주의라고 합니다.
하나님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우리. “이제 신은 죽었어”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이런 허세가 없습니다.
영화 속 철학 교수 제프리 래디슨(케빈 소버 분)이 바로 오늘, 그 니체의 명제를 잇습니다. 영화 속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 실재하는 인물들의 캐릭터지요.
래디슨은 대학 새내기들에게 ‘철학적 사고의 입문’을 강의합니다.
그가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교양 학점 채우려고 온 학생도 많을 텐데 대충 공부해서 좋은 학점 받을 생각이면 늦기 전에 철회할 것. 적어도 대학 수준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하지 않겠나.”
멋지죠. ‘철학 입문’ 과목 교수답습니다.
그의 이 말이 떨어지자 계단식 강의실 학생 중 하나가 “난 관둘래” 하고 나갑니다. 이를 지켜본 래디슨.
“늘 (나가는 학생이) 한 명은 있다니까.”
동시에 웃음이 터집니다. 그리고 웃음을 잠재우는 질문.
“미셸 푸코, 버트란트 러셀, 니체, 아인 랜드, 조지 산타야나, 데모크리토스, 드니 디드로, 데이비드 흄, 존 스튜어트 밀, 알베르 카뮈, 리처드 도킨스, 지그문트 프로이트, 노엄 촘스키 등 수많은 철학자 시인, 과학자 또는 작가. 즉 최고의 지식인들. 이들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긴장하지만 명강의가 기대되는 눈빛의 학생들. 또 다른 학생이 “모두 죽었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말합니다. 오답입니다. 세계적 석학 촘스키(87)와 도킨스(71)가 건재합니다. 래디슨은 좌중과 일시에 눈을 맞추며 카리스마를 발휘합니다.
“이들 모두는 무신론자다.”
여기까지. 관객은 여기까지 듣고 지적 탐험을 즐기려는 듯 편한 자세를 취합니다.
한데 래디슨의 다음 말이 학생과 관객을 얼어붙게 만듭니다. 강의실의 독재자로서 쐐기를 박는 거죠. 시나리오 원칙, 갈등의 탄생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 말로 ‘어마무시’합니다.
믿음은 가장 위험할 때 검증된다
“신은 죽었다. 신이 어느 날 죽었다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거다. 신은 오래전 인간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고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변명거리로 딱 좋았지. 신의 분노라고만 하면 전염병, 흉작, 재난도 다 설명됐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다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즉, 과학과 이성이 미신을 몰아낸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다 이해했을 테니 무의미한 토론은 생략하지. 대학 2학년만 되어도 다 아는 결론. ‘하나님은 없다.’ F학점 안 받으려면 나눠준 종이에 이렇게 쓰도록. ‘신은 죽었다.’ 그렇게 쓰고 서명해라. 신이 죽었다고. 모두 동의한다면 난 의미 없는 강의 생략해서 좋고, 여러분은 쓸데없는 과제 안 해서 편할 거야. 안그래도 학점 따기 힘든 과목이거든. 다 쓴 후에 종이는 우측으로 돌릴 것.”
학생들은 ‘F학점’이란 말에 거북이목 되어 ‘신은 죽었다’라는 자필을 쓰고 사인까지 합니다.
딱 한 사람 조쉬 휘튼(쉐인 하퍼)만 쓰지 않습니다.
“휘튼군 뭐가 문제인가.”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건 자네 마음이지만 이건 내 강의이거든.”
“못합니다.”
“그럼 대안을 알려주지. ‘신은 죽었다’라고 자필로 쓸 수 없다면 그 반대 명제를 증명해. 너의 하나님이 진짜라는 걸 납득시켜봐.”
전미 박스 오피스 4위 ‘실화 영화’
‘진정한 믿음은 가장 위험할 때 검증된다.’
기독교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C S 루이스의 말이죠. 신앙 안에서 사랑을 키워온 여자친구가 “법학도의 꿈을 가로막는 그런 교수 과목 안 들어도 된다”며 수강 철회를 요청하지만 휘튼은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증명에 나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처음엔 막막했겠죠.
이 작품은 지난해 3월 미국에서 개봉돼 전미 박스 오피스 4위를 차지했습니다. 한 달 동안 박스 오피스 10위권에 머물렀죠. 하버드 출신 중국계 의사 밍왕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 됐습니다. ‘노아’ ‘선 오브 갓’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등을 잇는 기독교 영화이나 그 작품들과 달리 ‘다이내믹한 영상이 없는 걸작’입니다. 이적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말씀을 보여줍니다. 16일 개봉. 국민일보가 기획하고 에스와이코마드가 수입했습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영화, 의문에 답하다… 영화 ‘신은 죽지 않았다’
입력 2015-04-04 0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