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남아 있는 겨울 냉기가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새벽, 푸른 안개를 뚫고 한 작은 소녀가 이화여대 교정을 향해 홀로 길을 가고 있다. 내가 여중 2년생이었던 부활절 새벽의 일이다. 새벽길을 걸으며 어린 마음에도 부활 새벽에 제일 먼저 예수님 무덤을 찾아갔던 마리아가 떠올랐었다. “마리아도 이렇게 새벽공기를 가르며 갔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마음이 슬픈 듯도, 설레는 듯도 하여 내가 마치 마리아가 된 것처럼 숭고한 느낌까지 들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새벽, 어린 소녀였던 나는 교회 학생부 부장이셨던 김봉현 선생님의 권유에 순종하여 집 가까이에 있는 이화여대 교정에서 교파를 초월한 지역 부활절 연합 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모인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둥글게 서서 어느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예배를 드렸었다. 지금의 대규모 부활절 예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소박한 예배였고 나처럼 어린 소녀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쑥스럽고 부끄러웠지만, 은혜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은 감동의 예배였다.
난생 처음 참석해본 그 새벽 부활절 예배는 그래서인지 무려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느낌 그대로 기억의 회로 속에 생생히 저장되어 매년 부활절을 맞을 때마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곤 한다.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같이 고통스러웠던 지난 5년간의 투병생활을 견뎌내고, 이렇듯 또 다시 문화 선교 전선에 뛰어들어 전진할 수 있는 것은 그와 같은 믿음의 추억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 삶에 그토록 아름다운 믿음의 기억들이 가득 담긴 추억의 앨범을 소유하게 해주신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우리 모두 다시 살아났음을 기뻐하며 왕이신 나의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립니다. 할렐루야! 우리 예수님 다시 사셨습니다!”
박강월(수필가, 주부편지 발행인)
[힐링노트-박강월] 마리아처럼 새벽에
입력 2015-04-04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