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의 가스펠 로드] (49) 광야에 길을 내시고 - 모로코 레드시티 마라케시에서

입력 2015-04-04 02:34
물 한 모금이 간절한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하나님은 고독한 방랑자에게 약동하는 생명력을 심어준다.

현대인에게 광야란 보통 가정과 직장 등 일상생활의 비유로 치환되어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짜 광야를 간다면 그 깊은 피로와 헛헛한 외로움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물 한 모금, 지나가는 이 하나 없는 세상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그렇게 크게 다가올 수 없다. 모든 것 위에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의 현현이 광야에는 차고 넘쳐 역설적으로 고독한 방랑자에게는 약동하는 생명력을 만끽하게 해준다.

2012년 5월 강렬한 색감과 오랜 역사의 흔적이 배어 있는 모로코의 레드시티 마라케시. 이국적인 매력에 빠진 세계의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시간을 잊고 한량을 즐긴다. 하나 나는 아니었다. 이미 모로코에서 몇 차례 사기꾼을 만나 신의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는데, 한 남자에게서 그만 컴퓨터를 또 도난당하고 말았다.

급하게 메일 쓸 일이 있어 인터넷방에 갔다. 개인 노트북이 고장난 상황이어서 불가피했다. 이때 한 남자가 내 노트북을 수리해준다며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독일에서 일한 엔지니어였으며 컴퓨터를 잘 안다고 하더니 몇 시간에 걸쳐 문제점을 살펴주었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페이스북을 통해 어린 딸, 아내와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의 노력이 고마웠다. 수리에 열중인 그가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했고, 나는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사왔다. 그리고 그는 보이지 않았다. 서류가방과 개인 정보는 그대로 있는데 내 컴퓨터만 들고 사라진 것이다. 그 뒤로 일본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며칠을 경찰서에 들락거렸지만 그의 신상까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잡아들이지 못했다.

며칠 후, 사람에 대한 환멸만 남은 난 정처 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 사하라 사막의 거친 내음이 온몸을 휘감은 와르잣 근처였다. 비록 현대적인 교회는 없었지만 온 천지가 창조주의 섭리가 선명한 예배당이었다. 처음에는 위로 가운데 찬양과 기도가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내 잠잠해졌다. 타오르는 갈증에 비트적거렸다. 입안이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사막의 방랑자가 된 나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치기어린 선택이었을까. 임계점에 임박한 나는 극한 상황을 준비해야 했다. 여차하면 사막에서 노숙하려 했다. 노숙이야 전 세계에서 단련되어 문제될 게 없지만 문제는 물이었다. 참을 수 없는 무력함에 동공이 풀리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어렴풋이 가옥이 보였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림자를 끌고 왔다. 흐릿한 정신을 붙잡고 문을 두드렸을 때 안에서는 놀란 표정으로 노인 부부가 이방인을 맞아들였다.

그늘은 몹시 시원했고, 나는 몇 잔의 물을 동냥할 수 있었다. “오, 주님!” 이것이 은혜였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시는 하나님은 결코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얼마 뒤 잠잠하던 세포가 다시 깨어나고 핏줄이 탱탱해졌다.

낯선 장소와 사람 사이에서 부대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몸과 마음 모두 가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물 한 잔으로 모든 것이 뒤집어지는 은혜를 맛봤다. 이 한 잔이 광야 여정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나는 서사하라에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님을 찾아 더 극한 환경의 모리타니로 내려갔다. 잃은 건 많았지만 마음은 겸손해졌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한다는 고백이 삶이 됨이 감사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문종성(작가·vision-mat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