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병석(63·경북 포항북) 의원은 요즘 어깨가 무겁다. 지난달 18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떠맡았기 때문이다. 특위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은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를 재획정하고 국민들의 요구가 높은 정치개혁 방안들을 논의한다. 특위가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에 따라 우리 정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반면 ‘여의도 보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미온적인 개혁안을 내놓는다면 국민들의 여망이 고스란히 비난으로 바뀌어 되돌아올 것이다.
특위 제2차 전체회의가 열린 1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그는 특위가 논의할 사항인데 위원장 개인 의견을 밝히기에는 조심스러운 점이 있다면서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 정치개혁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특위가 여야의 이해다툼, 의원들의 이기주의에 밀려 표류하고 개혁의 중대한 장애가 된다고 생각될 때는 정치개혁의 물꼬를 트기 위한 중대한 결심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듯한 상황인식 때문인지 그는 인터뷰 도중 ‘국민이 호랑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중책을 맡았는데 정개특위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
“대한민국 100년 정치의 새로운 주춧돌을 놓는 위원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국민권리 제일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 한 사람의 의사까지도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칼자루를 쥔 게 특위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권력 무소유 주의’도 지키려 한다. 호랑이 같은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특위를 운영하겠다는 게 위원장으로서 각오다. 이번 특위는 정치권의 생태계가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서 출발했다. 국민의 기본권 신장과 참정권의 견실한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선거구 재획정 문제가 초미의 관심이다. 이를 외부 기구에 맡기자는 의견이 많은데.
“여러 의견이 있다. 특위 위원들이 심도 있게 논의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여야 합의로 획정위를 중앙선관위에 두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또 획정위의 독자성과 중립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획정위의 선거구 획정 결과를 국회에서 수정 논의 없이 가부 결정만 내리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우리가 갖고 있는 칼자루 권력을 내려놓고 대신 보다 많은 정치개혁 안건들에 집중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이를 통해 공직선거가 실질적인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획정위원의 수나 구성을 결정할 권한도 선관위에 위임하는 것인가.
“획정위 구성 규칙은 정개특위에서 의결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입법행위다.”
-획정위에 정치권이 들어가는 문제는.
“논의해야 할 부분이다. 특위에서도 양론이 있다. 여야 특위위원 한 명씩은 획정위에 참여토록 해 정치권이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특위위원들이 대주주가 돼 획정위 전체 의견을 뒤집는 건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획정위의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특위위원이 들어가 의견을 개진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특위가 수정 권한을 갖지 않을 경우가 있었나.
“대한민국 정개특위 입법례에는 없었다. 애당초 획정위를 특위 외부에 둔 일이 없다. 이전 특위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의원 정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한 견해는.
“국민의 판단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현실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부딪히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 헌재가 요구한 표의 등가성, 인구비례 원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지역의 대표성이 매우 크게 흔들린다. 농촌 지역의 경우 의원 한 사람이 서울 지역의 네 배 정도 되는 지역구를 뛰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웃음). 인구비례에 따른 대표성과 지역 대표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가 관건이다. 기계적으로 지역구를 획정하면 사표 방지라는 취지를 오히려 놓칠 수 있고, 지역균형발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재 300명인 의원 정수의 선을 그어놓고 두 가지를 조화시키기는 현재로선 매우 어렵다. 어쨌든 기존의 300명 내에서 최대한 퍼즐을 맞출 작정이다. 하지만 정수를 늘릴 수밖에 없으면 국민 동의 절차를 충분히 거쳐 최소한의 범위에서 할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에 대한 견해는.
“대선 및 총선 후보를 당원 대신 일반국민의 투표로 선정하자는 이 제도에 현재 여야 모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양 정당이 국민들의 열망을 충분히 수렴하면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까지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제도인 만큼 전문가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정치 신인들에게 불리하다는 문제점을 보완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선관위는 오픈프라이머리가 도입되면 전국 선거권자 400만명 기준으로 대략 367억원이 소요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나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서는.
“두 제도 모두 실험적 대안이다. 일본이 석패율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병이 아니라 장성을 살리는 제도이다. 정치 신인이 아니라 중진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전국을 광역 권역으로 나누어 권역별로 인구비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이와 달리 매우 합리적으로 짜인 듯하다. 다만 수용 여부는 논의해봐야 한다.”
-지구당 부활 문제는 어떻게 하나.
“이 문제는 다른 정치 혁신안들과 연결된 사안이다. 큰 틀의 개혁안이 정리된 다음 부수적으로 논의될 사안이다. 특위는 투표시간 연장이나 선거연령 하향 등도 다루게 될 것이다.”
-선관위가 내놓은 안을 보면 정치권에 대한 압박이라고 해석할 정도로 강력한 개혁 요구가 담겼다. 위원장으로서 부담이 될 것 같은데.
“본래 선관위가 정치개혁 하라 마라 할 권한이 있는 건 아니다. 정치권이 논의할 것을 너무 선도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의견을 개진하는 건 좀 앞서간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어떻게 정치개혁의 대로 위에 많이 반영할 것이냐는 대원칙에서 보면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니다. 선관위도 헌법기관인 만큼 헌재가 내린 결정을 집행하기 위한 주무부처가 될 수 있다.”
◇약력 △1952년 포항 홍해 출생 △고려대 △93∼96년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정무비서관 △16·17·18·19대 의원 △국토해양위원장 △2012년 7월∼2014년 5월 국회 부의장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 회장
김의구 부국장 egkim@kmib.co.kr
[데스크 직격 인터뷰-이병석 국회 정개특위 위원장] “여야 다툼에 정치개혁 표류 땐 중대 결심”
입력 2015-04-03 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