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대선·총선에서 전 군부 통치자 무함마두 부하리(72)가 이끄는 제1야당 범진보의회당(APC)이 승리했다. 굿럭 조너선 정부가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보코하람 척결에 실패하고 계속되는 뇌물 등 부정부패 추문에 시달리면서 나이지리아 국민들은 민주 선거로 군정시절 인물을 소환하는 ‘역설적’ 대안을 택했다. 외신들은 사상 첫 민주적 정권 교체로 아프리카 대륙에 민주주의가 꽃 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나이지리아 선거관리위원회(INEC)는 부하리가 36개 주와 연방수도 특별자치구에서 52.4%를 득표해 43.7%에 그친 조너선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고 31일(현지시간) 밝혔다. 부하리가 이끄는 APC의 승리로 군사정권 종식 이후 16년간 이어진 인민민주당(PDP)의 장기집권은 막을 내리게 됐다. 조너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대선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라이 무함마드 APC 대변인은 “나이지리아에서 집권여당이 순수하게 민주적 수단에 의해 권력을 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군정 시절에는 쿠데타와 내전이 만연했으며 민정 복귀 이후에도 야당에 의한 부정선거 의혹이 매번 제기돼 왔다. 결과 발표 전날도 미국과 영국의 외무장관은 “개표 과정에 정치적 개입이 자행될 우려가 있다”는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조너선 대통령의 공언대로 공정하게 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이 같은 우려는 기우에 그쳤다. 워싱턴포스트는 “나이지리아가 전 세계를 향해 커브볼(변화구)을 던졌다”며 “인구 1억7000만명의 대국 나이지리아가 사상 가장 투명하고 신뢰할 만한 선거로 정권 교체를 이뤄내 우려가 틀렸음을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허핑턴포스트도 “산발적인 폭력사태와 오락가락하는 날씨, 투표장에 길게 늘어선 줄도 변화를 원하는 나이지리아인들을 막지 못했다”면서 “아프리카 대륙에 민주주의가 꽃 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각각 성명을 내고 “나이지리아의 민주주의가 성숙했다는 증거”라며 환영했다.
부하리는 1983년 쿠데타로 집권했다가 2년 만에 쿠데타로 축출된 경력이 있는 군 출신 인사다. 민간정부를 전복한 이력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집권 당시 강조했던 청렴·강직한 이미지와 함께 그의 군 경력이 보코하람 등 극단주의 세력과 맞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를 받았다.
이슬람교가 주를 이루는 북부와 기독교도 중심의 남부로 양분된 나이지리아의 정치 지형에서 북부 출신 무슬림인 부하리의 당선은 군정 이래 한동안 권력의 중심에서 소외됐던 이슬람계가 나이지리아 정치를 이끌게 된다는 의미도 지닌다. 향후 출범할 부하리 정권이 같은 이슬람계 극단주의 세력인 보코하람과의 전쟁을 어떻게 종식시킬지도 이목이 집중된다. 새 정부는 또 국제유가 하락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나이지리아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보코하람 퇴치 위해서라면… 옛 독재자 선택한 나이지리아
입력 2015-04-02 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