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마흔, 쉰을 넘어가며 달라지는 것은 젊었을 때에 비해 ‘부고’에 익숙해지는 일이다. 죽음은 적군처럼 일상을 기습하고 그 횟수가 점점 잦아지며 아예 일상에 녹아든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발표된 8편의 단편을 묶은 함정임(51·사진)의 8번째 소설집 ‘저녁 식사가 끝난 뒤’(문학동네)에도 그런 죽음의 풍경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프랑스 여행 중 접한 P선생의 부고(‘저녁 식사가 끝난 뒤’), ‘멕시코 삼촌’을 떠올리게 한 ‘춘아 고모’의 죽음(‘기억의 고고학-내 멕시코 삼촌’), 네팔에서 운명적인 사랑처럼 만난 천민 출신 소녀의 죽음(‘오후의 기별’) 등등.
스스로 ‘노마드’를 자처하는 작가는 자주 여행길에 오르는데, 그런 경험치는 이 소설집 속 단편의 다채로운 시공간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 부산 뒷골목 기억을 더듬던 작가는 어느새 뉴욕의 맨해튼과 브루클린, 지구 반대편의 멕시코, 네팔의 산정호수 등으로 날아간다. 그 광대한 지구 도처를 배경 삼아 작가가 공통적으로 길어 올린 것은 죽음의 에피소드이다. 문학평론가 이소연씨는 “세계와의 부단한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것의 중심에 상실이 있다는 치명적인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소설 속 죽음은 비극적 서사가 아니다. 상실의 빈 공간은 추억으로 채워지고 이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일상을 밀어가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위로와 치유의 서사이기도 하다.
표제작 ‘저녁 식사가 끝난 뒤’에는 P선생을 떠올리며 각자 소중한 추억의 징표를 가지고 식탁에 둘러앉은 8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마련해온 노래와 시와 음식이 빚어내는 저녁식사의 풍경은 따뜻하기까지 하다. P선생은 떠났어도 각자의 가슴 속에 살아남아 서로를 이어주는 끈이 되어주고 것이다.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에선 미국인 가정의 한국인 입양아 ‘무일(無日)’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언제 태어난 지 몰라서 그의 한국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단다. 그는 양아버지 알렉스로부터 떠나기 위해 독하게 공부했고 뉴욕에서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그는 죽어가는 노인과 집을 함께 쓰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무일이 양아버지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점에서 죽음은 자기 성찰의 계기로도 작용한다. 그래서 작가는 죽음의 의미를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소설 쓰기란 추모의 형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세상 어느 한 곳 어느 하나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있다.”(‘작가의 말’에서)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지구 도처를 배경 삼은 죽음의 에피소드… 함정임 새 소설집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입력 2015-04-03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