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어, 광고 사진속 시각이 똑같네

입력 2015-04-03 02:36
애플워치의 광고 사진을 눈 여겨 본 사람이라면 시계가 10시9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한두 장의 사진만이 아니다. 모든 제품 사진의 시간은 동일하다. 우연의 일치일가 아니다. 표시하는 시간에는 숨겨진 메시지가 있다.

◇애플워치 시간에 담긴 야망=롤렉스, 태그호이어 등 시계 브랜드의 광고 사진에서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10시10분이다. 가끔 예외적으로 다른 시간으로 하기도 하지만 10시10분으로 놓고 광고 사진을 찍는 건 시계업계의 불문율과 같다. 시각적으로 제일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10시10분으로 하면 시침과 분침의 배열이 알파벳 V자 형태로 보인다. 승리를 의미하는 빅토리(Victory)의 앞 글자가 되는 셈이다. 또 시계 정중앙에 위치하는 브랜드를 가리지도 않게 된다. 일부 브랜드는 8시20분을 사용하기도 한다. 10시10분처럼 대칭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면 애플은 왜 애플워치 시계를 10시9분에 맞췄을까. 애플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전통 시계 산업에 대한 애플의 도전장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0시10분보다 1분 앞선 시간을 표시해 애플워치가 기존 시계보다 앞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천편일률적으로 10시10분을 쓰는 시계업계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는 시각도 있다. 영국 BBC방송은 “애플이 시계 업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기존 시계 산업에 위협이 되는 시계로서 여겨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조니 아이브 수석 부사장이 애플워치를 디자인 할 때 시계의 역사에 빠져들었다”고 강조했다. 애플워치가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전통적인 시계업계의 연장선상에 있는 제품이라는 의미다.

◇치밀하게 계산하는 애플=애플은 제품에 시간을 표시할 때 매우 꼼꼼한 모습을 보여왔다. 완벽주의를 추구한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다. 2007년 1월 9일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할 때 프레젠테이션 화면에는 9시42분이 표시된 아이폰이 등장했다. 행사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됐고 아이폰을 처음 공개하는 시간이 9시42분이었기 때문이다. 행사가 진행되는 시간과 제품에 표시되는 시간이 정확하게 일치된 것이다. 스콧 포스톨 전 애플 부사장은 “아이폰을 소개하기 전까지 프레젠테이션이 40분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면에 제품이 소개되는 순간, 행사에 참여한 관객들 시계의 시간과 일치되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확히 40분이 될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해서 1∼2분의 여유를 주게 됐고, 최종적으로 9시42분으로 결정했다. 이후 애플은 모든 광고 사진과 영상에 9시42분이 표시된 아이폰을 등장시켰다. 잡스는 “애플이 전화기를 새로 발명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아이폰에 박혀 있는 9시42분은 스마트폰의 새로운 역사가 쓰인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다. 그러다 2010년 아이패드가 공개되면서 시간은 9시41분으로 당겨졌다. 수차례 제품 공개 행사를 하면서 예상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게 됐고, 9시41분에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등 모든 제품 사진의 시간을 9시41분으로 통일하고 있다.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 광고 사진에도 어김없이 9시41분이 표시돼 있다.

◇체계적으로 시간을 부여하는 삼성=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은 항상 오후 12시45분을 가리킨다. 12시45분이 시각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꽉 차 보이기 때문이다. 언팩 행사를 비롯해 전 세계에 쓰이는 광고에는 모두 낮 12시45분이 적힌 갤럭시 스마트폰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최신 모델인 갤럭시S6와 갤럭시S6 엣지는 오후 12시45분이라는 시간과 그 아래 2015년 3월 1일이 적혀 있다. 이 날은 삼성전자가 언팩 행사를 통해 두 제품을 공개한 날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오후 12시45분 원칙은 글로벌 출시 모델에 한정된다. 국내 출시 제품에는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갤럭시S6는 오전 9시20분, 갤럭시S6 엣지는 오전 9시25분이다. 날짜도 제품 공개일인 3월 1일이 아니라 판매가 시작되는 시점인 2015년 4월 10일이다. 국내 모델의 경우 모델명이 시간으로 기록된다. 갤럭시S6의 모델명은 SM-G920이고 갤럭시S6 엣지는 SM-G925다.

이전에 출시된 제품도 동일한 방식으로 시간이 적혀 있다. 갤럭시 노트4(모델명 SM-N910)는 오전 9시10분, 갤럭시 노트 엣지(SM-N915)는 오전 9시15분이다. 갤럭시 노트4 S-LTE(SM-N916)는 9시16분이다. 갤럭시S5(SM-G900)은 오전 9시, 갤럭시S5 광대역 LTE-A(SM-G906)은 오전 9시6분이 표시된 제품 사진이 사용된다. 외형이 같은 갤럭시 노트4와 갤럭시 노트4 S-LTE는 광고 사진을 보면 어떤 제품인지 구분이 가능한 셈이다. 이처럼 삼성전자는 모델명으로 시간을 기록해 한 눈에 제품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삼성전자가 1년 동안 출시하는 모델이 많고, 하나에서 파생되는 제품도 많기 때문에 체계적인 식별을 위해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스마트워치 기어의 경우에는 화면 디스플레이 표시 방식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한다. 아날로그 형식의 화면일 때는 일반 시계와 같은 10시10분으로 하고, 디지털 화면일 때는 10시00분이다. 기어S는 애플워치처럼 10시9분으로 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