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는 ‘서양 예술의 결정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을 중심으로 연극, 문학, 무용, 미술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페라 연출가는 다양한 장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 분석력, 세련된 미적 감각 등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 오페라계에서 한국 성악가들이 급증했지만 한국 연출가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유럽에서 한국인 여성 연출가가 맹활약하고 있다. 오는 12∼1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되는 국립오페라단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나는 김요나씨가 주인공이다.
1일 예술의전당의 국립오페라단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유럽 오페라계에서 아시아 출신 여성 연출가로 사는 게 만만치 않지만 유리한 점도 있다”며 “비유럽인의 시각에서 오페라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출연진들이 처음엔 아시아 여성 연출가라는 데에 불안해 하지만 작품을 열심히 분석해 가면 곧바로 따라온다”고 했다.
문학소녀였던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면서 오페라의 매력에 빠졌다. 빈 국립대학 현대문학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연극학 수업의 일환으로 극장을 다니며 극예술에 반했고, 아예 극연출 수업까지 들었다. 그는 “극장에 들어오면 먼지가 조명에 타는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를 맡으면 살맛이 났다”면서 “극장에서 안내원을 비롯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한 덕분에 수많은 공연을 공짜로 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저명한 여성 작곡가 아드리아나 횔츠키와의 만남은 큰 전환점이 됐다. 2004년 공연을 목표로 독일 드레스덴 잼퍼 오페라로부터 작품 위촉을 받았던 횔츠키는 마음에 드는 대본 작가를 찾지 못하다가 그가 각색한 ‘맨하탄의 선신’을 택했다. 이후 ‘히브리스/니오베’ ‘마마 돌로로자’ ‘악령’까지 4편의 현대오페라 대본을 썼다. 지난해 만하임 국립오페라 위촉으로 제작된 ‘악령’은 국제오페라비평가협회 선정 ‘2014 최고의 현대오페라’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한국어로 글을 쓰면 지나치게 감상적인데 독일어로 쓰면 오히려 이성적이 된다”며 “대학에서 미학과 문학을 공부한 덕분에 현대오페라 대본에 맞는 프레임을 빠르게 익혔던 것 같다”고 겸손해 했다.
그는 2005년 독일 부퍼탈 시립극장에서 오페라 ‘자이데’를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원래 예정됐던 연출가의 대타였지만 참신한 연출이 주목받은 뒤 유럽 주요 오페라 무대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몇몇 작품은 독일 최고의 극예술상인 ‘파우스트상’ 연출 부문에 추천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오페라를 연출하면서 비로소 내게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서 “하지만 아직도 새로운 오페라를 연출할 때와 작품을 올리고 난 뒤 관객들의 평가를 기다릴 때는 늘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린다. 축복이자 저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인터뷰] 오페라 연출가 김요나씨 “좋은 오페라 연출가가 되려면 인간과 사회를 향한 통찰력 키워야”
입력 2015-04-02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