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문체부와 ‘괄목홍대’

입력 2015-04-02 02:20

“홍대파 아니면 디자인 전공.”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장의 출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고, 오승종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과 방석호 국제방송교류재단 사장은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홍익대 법학과 교수를 지냈다. 또 송성각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은 국민대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얼마 전 사의를 표명한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중앙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와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를 역임했다. 홍익대 출신 또는 디자인 전공자가 문체부 산하 기관장을 줄줄이 꿰찬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해 8월 임명된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나와 같은 학과의 교수를 지냈다. 김세훈 위원장은 김 장관의 홍익대 후배이고, 오승종 위원장과 방석호 사장은 김 장관과 홍익대 동료 교수였다. 능력에 따른 인사라고는 하지만 뭔가 미심쩍은 구석은 있다. 특히 김 장관 취임 이후 홍익대 출신 인사의 진출이 부쩍 늘어나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괄목홍대(刮目弘大)’라는 사자성어가 유행할 정도다. 위원장과 함께 임명된 영진위 위원 3명 중 2명도 홍익대 출신이고, 1명은 김 장관이 석사학위를 받은 미국 아트센터디자인대학 출신이다.

최근 이영철 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예술감독의 해임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이 전 감독에 따르면 문화창조원 내 창제작센터장을 예술감독에 준하도록 정관을 바꾼 뒤 그 자리에 홍익대 출신의 목진요 연세대 디자인예술학부 교수를 앉히려 했다는 것이다. 2012년부터 아시아문화개발원 초대 원장, 아시아문화전당 전시부문 예술감독을 지낸 이 전 감독은 “홍익대 중심의 전국적인 인사 교체 논란이 아시아문화전당 사업에도 재현 중인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반발했다.

변추석 사장의 거취를 둘러싸고 말들도 많다. 문체부는 변 사장이 건강상의 문제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했지만 일각에서는 업무를 놓고 문체부와 빚은 갈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일한 인연으로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변 사장이 아니던가. 문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김 장관이 실세 장관으로 힘이 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련의 인사 조치를 보면 김 장관의 파워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융성을 내세우며 국가 브랜드를 새롭게 디자인하겠다고 천명한 대통령에게 김 장관이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다.

산하 기관장 인사가 학맥이나 전공에 따라 좌우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줄 기회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을 앞두고 있다. 서류심사와 심층면접을 거쳐 최효준 전 경기도미술관장과 윤진섭 미술평론가가 최종 후보에 올랐다.

최 전 관장은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전북도립미술관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장, 경기도미술관장 등을 지낸 미술행정 전문가다. 윤 평론가는 홍익대 미대를 나와 호남대 미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국제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두 후보는 역량평가와 고위공무원 임용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게 되며, 정부는 이 심사 결과 등을 토대로 한 사람을 임기 3년의 새 관장으로 임명할 예정이다. 미술계에서는 관장 임명이 이르면 4월 중순, 늦어도 5월 초에는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따져봐야 할 게 수두룩하다. 전문성은 있는지, 글로벌 비전을 갖고 있는지, 갈라진 미술계를 화합시킬 능력은 있는지, 작가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 논문 표절이나 추문은 없는지 등등. ‘인사가 만사’라는 격언이 이번에는 제대로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