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선수 A씨(26)는 2013년 3월 8일 서울 노원구 광운로2길에 위치한 광운대학교 아이스링크에서 훈련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앞서 주행하다 넘어지는 선수를 피하던 중 따라오는 선수와 부딪쳤고, 이후 안전 펜스에 충돌했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그는 이 사고로 척수손상에 의한 하지마비 증세를 보여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보행, 이동, 기립이 스스로 불가능하고 일상적인 생활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2년여간 큰 수술과 치료를 반복해 왔지만, 끝을 기약할 수 없는 재활치료가 남아 있다. 뒤늦게 알려진 이 사건은 그저 한 운동선수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보고 넘기기엔 간과할 수 없는 점이 많다.
◇‘안전 펜스’, 누구를 위한 시설물인가?=펜스는 선수들을 위해 링크장 안에 설치된 유일한 안전시설물이다. 하지만 A씨는 이 펜스에 부딪혀 쇼트트랙 사상 유례가 없는 큰 부상을 입었다. 확인 결과 사고 당시 광운대 아이스링크는 20㎝ 두께의 펜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실업팀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주로 이용하는 국내 유수의 아이스링크들은 40∼60㎝의 펜스를 사용한다. 문제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안전 펜스에 관한 규정을 국제빙상연맹(ISU)의 규정으로 준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ISU는 국제 대회 규격 안전 펜스 규정을 40∼60㎝로 적용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광운대학교는 권고 기준에 미달하는 펜스를 사용했다. 현직 쇼트트랙 선수 자녀를 둔 학부모 B씨는 “당시 광운대 아이스링크를 이용했던 선수들이 얇은 펜스로 인해 계속 피해를 입고 있었다”며 “학부모들이 관계자에게 여러 번 펜스 교체를 건의했지만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광운대 아이스링크는 20㎝ 두께였던 안전 펜스를 A씨의 사고 후 50㎝ 두께로 교체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광운대 아이스링크 관계자는 “펜스 교체는 A선수의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일”이라며 “사전 펜스 교체 요구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젊은 선수의 사고에 학교 측도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후 선수들 개인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리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지금도 여러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훈련만 있고 책임은 없다?’ 선수만 외로워=사고 발생 후 줄곧 병원에 입원 중인 A씨는 “병원비가 1억여 원에 달하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A씨는 단체훈련을 받던 중 사고를 당했다. 사고 과정에서 개인의 과실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왜 사고에 대한 책임은 홀로 짊어지고 있을까?
광운대 아이스링크는 1998년 개관과 동시에 ‘체육시설업자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이는 체육시설업을 등록한 체육시설 업자 중 문화관광부령이 정하는 소규모 체육시설업자를 제외한 모든 체육시설이 가입해야 하는 의무 보험이다. 하지만 A씨는 광운대 아이스링크가 가입한 보험을 통해서도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보험 지급 면책사유에 있다. 광운대 아이스링크장이 가입한 체육시설업자배상책임보험은 ‘각종의 경기단체(협회, 연맹 포함)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운동선수 또는 그의 지도 감독을 위하여 등록된 자가 그 운동을 위하여 연습, 경기 또는 지도 중에 생긴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에 대해서 보상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있다. 즉, A씨는 빙상연맹에 가입된 공식 선수이기 때문에 보험사의 책임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광운대 아이스링크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 굴지의 손해보험사 10곳의 체육시설업자배상책임보험을 검토한 결과, 약관을 공개하지 않은 몇 곳을 제외한 모든 손해보험사에서 비슷한 조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해보험협회 측은 “전문 운동선수들은 일반 가입자보다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잦다”며 “위험도가 높다 보니 보험사가 선수들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의 경우 훈련 중 부상 선수에 대한 상해보험 처리 규정이 있다. 이는 ‘연맹이 주관하는’ 사업(국가대표, 후보, 청소년, 꿈나무)과 관련된 훈련만이 대상이다.
A씨는 사고 이후 연관된 선수들과 그의 코치, 광운대 아이스링크 시설 책임자를 형사 고소했으나 ‘혐의 없음’과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그는 최근 광운대 시설책임자에 대한 항고를 진행 중이며 민사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결국 빙상연맹에 가입된 A선수의 병원비나 미래를 위한 보상책임을 질 곳은 현재의 보험약관이나 규정상으로는 없다. A씨는 “사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덮어씌우려는 선수·코치들, 아이스링크 관계자 등이 이번 사건을 통해 양심과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며 “더 이상 동료, 선후배 선수들이 나 같은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수미 기자
한 쇼트트랙 선수 훈련사고-투병 2년… 장애 판정만 남고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입력 2015-04-06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