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1번지 창원 진해군항제

입력 2015-04-02 02:59
지난 31일 경남 창원시 진해의 경화역에 만개한 벚꽃 터널 사이로 열차가 들어오자 관광객들이 그림같은 풍광을 일제히 카메라에 담으며 봄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진해역과 성주사역 사이에 위치한 경화역은 이름만 남고 역사 건물은 없어졌지만 약 800m 길이의 벚꽃 터널 사이로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이 장관이어서 인기를 얻고 있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말하자면 오늘은 벚꽃새해.” 소설가 김연수는 단편소설 ‘벚꽃새해’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봄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에 벚꽃이 빠질 수 없다. ‘봄꽃의 제왕’ 벚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번식력이 강하다. 4월 초순부터 시작해 중순쯤 전국을 하얀 꽃구름으로 뒤덮는다. 한번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 순간 꽃비를 뿌리며 지기 때문에 활짝 피는 시기를 잘 맞춰야 제대로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남녘의 하늘이 연분홍빛으로 채색되고 있다. ‘봄꽃의 제왕’ 벚꽃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은 경남 창원시 진해다. 벚나무가 많아 ‘벚꽃 1번지’로 꼽힌다. 38만7000여 그루의 벚나무 꽃망울이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힘주어 몸을 부풀리다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벚꽃새해’는 그렇게 문을 열었다.

이번 주말쯤 탐스러운 꽃망울을 모두 터뜨리면 온 천지가 솜사탕처럼 하얗게 뒤덮인다. 한줄기 바람이라도 불면 진해 전역에서는 하얀 꽃눈이 내린다. 꽃눈은 거리와 철길을 순백으로 물들이고, 사람의 마음도 사랑으로 채운다.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에 동동 떠다니는 조막만한 꽃잎 배들에 연인들의 깨알 같은 웃음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매년 4월초 열흘 동안 진해 일원 만발한 벚꽃 아래에서 꽃 축제가 열린다. 우리나라 대표 봄꽃 축제로 자리잡은 진해군항제이다. 1952년 충무공 동상을 세우고 추모한 것이 유래가 돼 1963년부터 해마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 맞춰 개최된다. 올해 53회를 맞은 군항제는 지난 1일 시작해 10일까지 열린다. 문화예술행사, 세계군악페스티벌, 팔도풍물시장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화사한 벚꽃과 어우러진다. 평소 출입이 힘든 해군사관학교와 해군진해기지사령부도 개방된다.

도시 전체가 벚꽃 천지인 진해에서 벚꽃 명소를 찾는 일이 무의미할 수 있다. 굳이 꼽으라면 여좌천, 경화역, 장복산공원, 안민고개, 시루봉, 제황산공원, 해군사관학교 등이 유명하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여좌천이다. 미국 CNN방송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50곳’ 가운데 벚꽃 명소로 선정했다. 해군사관학교 들어가는 길목에서 시작된다. 1.5㎞ 실개천을 따라 벚꽃 터널이 펼쳐져 온 세상이 꽃 속에 파묻히는 기분이다. 형형색색의 우산과 조명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았고 물가에는 유채꽃까지 피어 사진 촬영장소로 인기가 높다. 천변 위에는 나무데크 산책로와 아담한 다리, 맨발 지압로도 조성돼 있다. 드라마 ‘로망스’에 등장한 ‘로망스 다리’가 인기다. 벚꽃은 밤에 보는 것이 더 아름답다. 다리 주변에 설치된 조명 덕분에 야경도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인근 내수면환경생태공원에서는 봄 가을 두 번 꽃을 피우는 희귀종 ‘춘추벚’을 볼 수 있다.

경화역도 빠질 수 없다. 고즈넉한 철길을 따라 화사한 벚꽃이 가득해 가족·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철로를 걷지 말라는 푯말이 있지만 벚꽃이 만개하는 축제 기간에는 경고문도 무용지물이 될 만큼 철길을 걷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어쩌다 한 번씩 지나가는 기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면 사람들은 플랫폼에 늘어서서 기차와 어우러진 벚꽃 풍경을 일제히 카메라에 담는다. 화려하게 핀 벚꽃 사이로 지나가는 열차 사진은 진해 군항제를 대표한다.

군항제 기간에만 개방되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사령부는 바다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실물 크기로 복원된 거북선이 바다 위에 떠 있고 충무공 이순신과 옛 수군에 관련된 자료가 있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도 둘러볼 수 있다.

올해는 마침 대한민국 해군 창설 70주년이다. 육·해·공 3군과 해병대 의장대, 염광여자메디텍 고등학교 밴드부가 참여하는 ‘진해군악의장페스티벌’은 3∼5일 진해공설운동장을 비롯한 진해시내 곳곳에서 개최된다. 공군 특수비행전대인 ‘블랙이글스’는 5일 진해공설운동장 상공에서 20여분간 곡예비행을 해 축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꽃놀이 인파로 북적대는 여좌천이나 경화역을 피해 호젓하게 꽃눈을 맞으며 산책을 즐기려면 안민고개나 제황산 공원, 시루봉, 장복산 공원이 더 좋다. 안민고개의 십리벚꽃 길은 드라이브를 하기에 좋고 제황산 공원에 있는 진해탑은 전망이 훌륭하다. 중원로터리를 주축으로 근대식 건물과 벚꽃이 함께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시루봉은 자은초등학교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약 3㎞에 벚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줄줄이 늘어서 하늘을 하얗게 덮는다. 걸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산책로다. 진해시를 병풍처럼 둘러싼 장복산은 울창한 송림과 함께 1만여 그루의 벚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진해의 대표산이다.

작은 꽃망울이 툭 터져 발그레하게 만개한 모습도 좋지만 벚꽃은 역시 떨어질 때가 제맛이다. 봄바람을 타고 허공에 한참을 떠다니다 바닥에 내려앉는 꽃잎은 마치 눈송이 같다. 되도록 두 발로 걸으면서 꽃놀이를 즐기는 것이 좋다. 길이 많이 막히기도 하지만 진해 구석구석을 걸으며 나름의 벚꽃 포인트를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진해 군항제의 또다른 주인공은 ‘빛(Luminary)’이다. 창원시는 10일까지 여좌천, 제황산 공원에서 매일 별빛축제를 열고 있다. 벚꽃을 배경으로 저녁마다 전구 수만 개가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는 루미나리에를 점등한다. 진해루에서는 10일 오후 8시부터 밤바다를 배경으로 각종 불꽃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멀티미디어 불꽃 쇼가 열린다.

벚꽃 아래에서 속삭인 사랑을 이루러 저도 연육교로 가보자. 구복리와 저도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된 2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다. 1987년 세워진 옛 다리는 영화 ‘콰이강의 다리’를 닮은 보행자 전용 다리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하다. 연인이 다리를 건너는 동안 손을 놓지 않으면 사랑이 이뤄진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연인들이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걸어 사랑을 맹세한 모습이 이채롭다.


창원=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