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가족의 해체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이제 정부도, 가정도 노후보장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지 못한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30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노후대비는 가족의 책임이라는 응답이 1998년 89.9%에 달했으나 2014년에는 31.7%로 줄었다. 같은 기간 노후 대비가 가족과 정부,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는 응답은 2.0%에서 47.3%로 늘었다. KDI는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분석해 이런 결과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공적 노후보장체계가 아직 미흡한데도 노인에 대한 가족의 경제적·정서적 지지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은 노인들이 기댈 곳이 점점 더 없어진다는 말과 다름없다.
알다시피 노인들의 현실은 참담하다. 3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4년 노인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28.9%가 생계를 잇기 위해 일하고 있다. 서구의 노인들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은퇴해 연금으로 생활하려고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노인의 9.7%는 현재 일하고 있지 않으나, 일하고자 하는 욕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장년층의 은퇴 후 연금 지급 개시 시점까지의 공백과 낮은 연금지급 수준 탓에 노인빈곤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도, 노인 자살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거의 부동의 1위다.
문제는 노후 생계의 책임이 점차 국가 몫으로 옮겨가면서 가족의 기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김희삼 연구위원은 “정부의 공적소득이전은 자녀로부터의 사적소득이전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즉 정부의 노인부양 역할 강화는 가족의 기능 약화를 가속화해 다시 정부의 노인복지 수요를 더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일본에서처럼 결혼한 자녀가 부모에게 용돈을 전혀 주지 않는 등의 가족 유대감 약화, 그리고 노후대비 저축에 덜 노력하게 되는 도덕적 해이도 유발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정부가 노후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 따라서 기본적인 경제적·정서적 유대를 제공하는 가족의 기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가족은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원형적 단위로서 사회통합적 순기능을 수행한다. 가족의 경제적 지원이 정부의 재정 확대 여력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들 경우 노인들의 곤궁은 가중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이라거나 ‘가족 내 노인의 위치가 불안정해졌다’는 등 고령화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추기고, 고령화 대비에 국가의 역할만 강조한 것은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의 역사적·문화적 특성에 맞게 정부와 가정 및 사회가 각각 일정 역할을 감당하는 노후보장체계를 구축하는 과제에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사설] 급변하는 현실 반영해 한국형 노인복지틀 구축을
입력 2015-04-01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