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꼬리를 잡자는 게 아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29일 재외공관장 회의에서 미·중 사이에 낀 우리 처지를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라며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런 말도 했다. “고뇌가 없는 무책임한 비판에 신경 쓸 필요 없다. 패배주의적, 자기비하적, 사대주의적 시각에 대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결정은 고난도 외교력이 발휘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일벌레로 소문나 있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을 정도다. 외교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밤 12시가 지나든 저녁 식사시간이든 상관이 없다. 수시로 회의하고 점검하고 모든 보고서를 읽고 쓰고…. 박근혜정부 들어서 점수 까먹을 일만 수두룩했는데 그나마 외치(外治)에서 평균 점수를 올렸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던 배경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3년차 들어서 이런저런 사람들이 외교·안보·통일 관련 중간계산서를 내보니 눈길을 끈 구호만 있었지 도대체 해놓은 것이 없다.
한국이 주도하고 미·중·일·러가 완전 동의했다는 ‘코리안 포뮬러(Korean Formula)’도 윤 장관이 제시한 지 반 년이 넘었다. 러브콜을 받고 있다면 이 6자회담 재개방안을 실행시키기 위해 물밑에서라도 미·중이 북한을 설득·압박해야 한다. 그런데 두 나라가 적극 도와준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미 의회에서 첫 일본 총리 상·하원 합동연설이 이뤄진다고 하고, 워싱턴에선 ‘한국 피로감’이 퍼진단다. AIIB의 핵심은 지분과 사무국 위치인데 ‘절묘한 시기에 고난도 외교력’을 발휘했는데도 이 중 더 얻은 게 없다.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데도 말이다.
우리 외교를 보면 공책에 받아 적고 선생님 앞에서만 분주히 움직이는 모범 학생 같다. 더 이상 나아가지도 않는다. 북핵 변수로 구한말보다 더 큰 판이 벌어지고 있는데 국가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는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다. 윤 장관의 자화자찬 발언은 윗분을 의식한 내부용인가.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한마당-김명호] ‘러브콜’을 받는다고?
입력 2015-04-01 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