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꿈을 잊지 않은 그대에게

입력 2015-04-01 02:10

며칠 전 막내 이모가 방송통신대 졸업식 사진을 보내왔다. 이모는 또래 친구들과 학사모를 쓰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4년 전 이모가 입학원서를 쓰던 날이 떠올랐다. 어느 과에 들어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이모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질문을 바꿨다. “좋아하는 게 뭐야?” 이모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지금까지 뭔가 해본 게 없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그 대답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엄마들이 그렇다. 가족의 삶을 돌보느라 자신이 무얼 좋아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미용 실습을 다녀오면 내 머리카락을 삐뚤빼뚤 자르거나 뽀글이로 만들었다. 나는 미용실에 가고 싶어서 엄마가 그 일을 관뒀으면 했다. 얼마 안 가 엄마는 정말 그 일을 관뒀다. 하지만 “엄마는 하고 싶은 것도 없냐?”는 말로 이따금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중에 이모에게 “그때 니 엄마, 진짜 열심히 했어. 직장 다니면서 너 돌보느라 필기를 제대로 볼 수 없어서 그랬지, 실기는 늘 만점이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이모가 공부하는 동안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도왔던 것은 엄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으리라. 이모가 시험을 칠 때면 나는 일찍 가서 도서관에 자리를 맡고 기다렸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공부했다. 이모가 지쳐 있으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얼마 전 이모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려면 실습을 해야 하는데 나이 든 사람을 받아주는 곳이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이모는 열심히 공부했고 그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데도, 현실에서 그것이 소용이 없는 것일까.

나는 어딘가에 이모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테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졸업을 앞두고 이모는 발품 팔아 보육원을 직접 찾아다녔고 결국 좋은 원장선생님을 만나 그곳에서 실습을 마치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땄다.

이모가 보내준 학사모 사진을 다시 봤다. 꿈을 잊지 않은 그녀가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