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의 한울2발전소 계측제어설비 정비용역 입찰 과정은 사업자 선정 기준이 20일 만에 크게 달라지면서 여러 의혹을 불렀다. 지난해 11월 3일 1차 공고와 같은 달 25일 재공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갑작스러운 기준 변경은 기존업체 포뉴텍에 혜택이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한수원 감사실은 조사를 벌여 담당인 한수원 엔지니어링처 C팀장과 S차장이 정당한 절차 없이 기준 변경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했다. 입찰 참여 업체들에 사전 예고도 없었다. 절차상의 문제에도 결국 변경된 기준이 확정됐고, 지난 26일 최종 공고됐다.
◇원전 사업 독점 낳는 산업부 고시=한수원 측은 한울2발전소 용역을 재공고하면서 사실상 사문화돼 있던 ‘엔지니어링 사업자 선정에 관한 기준’(산업부 고시 제2011-182호)을 적용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입찰에 참여하는 사업자의 일부 사업수행능력은 상대평가로 결정된다. 그럴 경우 경험과 인력이 많은 기존업체가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포뉴텍의 전신인 삼창기업은 2008∼2012년 계측제어설비 정비용역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독점은 원전 비리를 낳았다. 지난해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 수사단은 비리에 연루된 삼창기업 이두철 회장과 임직원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새누리당 홍지만 의원은 지난해 10월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상대평가 방식은 인력과 경험이 많은 한두 개 대형 업체와 기존 업체의 독점 낙찰을 유도한다”며 “경쟁입찰은 무의미해지고 유망 중소기업의 입찰 참여와 낙찰 기회는 박탈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산업부 고시 내용을 일부 적용하긴 했지만 신규 업체에 가산점을 부여했던 부분도 유지했다. 특정업체를 봐주려 한 것은 아니었다”며 “엔지니어링 사업자 선정 때 상대평가를 하도록 명시한 규정 자체가 기존 업체, 대형 업체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 발생한 오해”라고 해명했다
◇명확한 근거 없이 바뀐 기준=한수원이 갑자기 사업자 선정 기준을 변경하겠다고 통보하자 입찰에 참여한 Y사 컨소시엄은 근거를 물었다. 담당인 S차장은 두 가지를 들었다. 지난해 9월 30일 제출받은 한수원 법무팀 의견서, 그리고 지난 1월 산업부로부터 받은 고시 적용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이었다.
하지만 홍 의원실이 입수한 한수원 법무팀 의견서에는 산업부 고시를 전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산업부에 유권해석을 구한 부분도 Y사 컨소시엄에 불리한 내용들로 구성돼 있었다. 당시 산업부 담당자는 전후사정을 모른 채 “고시를 적용해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한수원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차장은 산업부에 “고시 내용을 적용하겠다고 해당 업체에 통보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 처리 중 고시 내용을 적용해 결격 처리할 수 있느냐”고 노골적으로 묻기도 했다.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고시를 갑자기 적용하기 위해 2개월쯤 전 받아놓은 의견서와 편파적인 내용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제시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수상한 편들기, 외압 있었나=이런 과정의 배경에는 한수원 본부장 출신 포뉴텍 고위 인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입찰 과정을 잘 아는 한 한수원 관계자는 “당시 포뉴텍 고위 인사가 S차장을 자주 만났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한수원 고위급 간부들과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뉴텍 측은 “산업부 고시 적용은 의무인데 이제까지 한수원이 제대로 적용하지 않은 것”이라며 “한수원에 불만이 있는 쪽은 오히려 우리”라고 주장했다. “간부들을 사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긴박한 업무처리 과정과 감사 결과를 보면 미심쩍은 대목이 많다. 중징계를 요청할 만한 사항이었지만 감사 도중 감사팀이 바뀐 뒤 C팀장에겐 경고, S차장에겐 견책이라는 경징계가 내려졌다. 이들은 전출 조치를 받지 않고 아직도 해당 부서에서 근무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감사 과정에서 문제가 확인됐는데 인사 조치도 안 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를 “내부 감사로 밝힐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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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31 03:18 수정 2015-03-31 0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