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드레스덴 선언 효과 위해서라도 ‘5·24’ 해제 필요”… 통일부 연구용역 보고서

입력 2015-03-31 02:28

통일부가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드레스덴 선언이 실질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조치 해제가 필요하다”고 지적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 없이 5·24조치 해제는 어렵다는 현재 정부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적이다.

통일부는 지난해 5월 경남대 김근식 교수(정치외교학)에게 ‘드레스덴 구상에 따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단계적 추진 전략’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해 같은 해 8월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이 보고서에서 김 교수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성패가 5·24조치 해제 여부에 달렸다고 역설했다. 다른 전제조건 없이 전면적인 대북 봉쇄 조치인 5·24조치를 우리 정부가 먼저 해제 또는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5·24조치 해제·완화, 금강산 관광 재개해야=김 교수는 “당면한 남북관계의 현실적 문제를 푸는 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이 갖는 힘과 가능성에 대해 아직 평가하기 이르다”면서 “남북관계의 기본은 활발한 교류·협력이다. 이를 통해 공통분모가 커지고 신뢰가 쌓이려면 5·24조치 해제·완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5·24조치 해제와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정부 공식 입장에 따라 북한도 일정 부분 예측 가능한 선택과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5·24조치 처리 방법에 대해 모호한 태도로 방치하기보다 분명한 전제조건이나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5·24조치 해제를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현 정부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드레스덴 선언은 북한 체제 부정…‘흡수통일’ 반발도 일리 있어=김 교수는 북한이 드레스덴 선언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흡수통일론’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데 대해서도 남측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론에는 여전히 북한 체제에 대한 대결적 인식이 배어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드레스덴 선언의 약점 중 하나는 진정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 내용 자체가 북한의 국가성(stateness)을 부정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며 민생 인프라 구축, 인도적 지원 등의 내용이 “북한 체제의 치부나 약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드레스덴 선언은 곧 흡수통일론’이라는 북한의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선제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그는 “드레스덴 선언을 현실화하기 위해 ‘북한이 진정성을 몰라준다’고 하기보다 그들의 강박관념과 국가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 대북정책 유연성 떨어져… 실효성 의문=이밖에도 보고서는 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에 걸쳐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보고서는 “구상 차원의 큰 그림과 현실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연결하고 융통성 있게 해결하는 기술적 과정이 필요하다”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이 그런 추진력과 해결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로 나타나야만 진정한 평가가 가능하다. 현실을 풀지 못한 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만 강조하는 것은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00만원 들인 보고서, 활용은 ‘無’=이 보고서는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에서 드레스덴선언을 발표한 지 2개월 뒤인 같은 해 5월 발주됐다. 계약금액은 2000만원이었다. 보고서는 3개월 뒤인 같은 해 8월 작성이 완료돼 통일부에 제출됐으며 지난 1월 정책연구관리 시스템(프리즘)에 등록됐다.

통일부 규정에 따르면 정책연구 보고서는 용역 종료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활용결과 보고서’를 프리즘에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보고서가 제출된 지 9개월이 다 되도록 프리즘의 해당 항목은 ‘미등록’ 상태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관계자는 “실무적으로 사후관리가 미흡해 등록이 안 됐다”며 “정책연구 용역의 취지는 다양한 의견을 수집하는 데 있다. 현재 대북정책 기조와 연구 보고서 활용 여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