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1주년을 맞았다. 4년 임기 중 ‘1학년’ 성적은 썩 좋지 않다. 사상 최저인 연 1%대로 기준금리를 내렸음에도 경제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은은 당분간 기준금리 결정 시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우려보다는 성장과 물가 등 거시경제 상황을 먼저 고려키로 했다. 추가 금리 인하 요구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 다음 달 9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주목된다.
이 총재는 30일 서울 중구 한은 본부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 결정에서는 거시경제 상황의 흐름이 우선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태까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줄곧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 마지못해 한은이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기준 금리를 낮추면 급격히 가계부채가 늘어나 금융 안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총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세 차례 기준금리 인하 과정에서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 안정 쪽에서의 부작용을 충분하게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지난번 금리를 내릴 때는 성장과 물가의 하방 리스크가 크게 증대된 상황에서 이에 대응할 필요성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전망했던 것보다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는 분석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디플레이션 등 극단적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담뱃세 인상을 빼면 물가상승률이 거의 0% 정도 되지만 근원인플레이션율이 2%대 중반에 있고 광범위한 물가 하락으로 확산되는 현상도 아니기 때문에 디플레 가능성은 낮다는 게 한은의 일관된 인식”이라고 밝혔다.
다음 달 1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 이 총재는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나라 경제가 마음의 짐이 됐다. 그는 “통화정책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함에도 중앙은행에 대한 기대가 과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 취임 이후 세 차례 인하로 기준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연 2.0%)보다 낮은 연 1.75%로 떨어졌다.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의도였다. 지난 1월 시중 통화량은 1년 전보다 8.0% 늘어 지난해 3월의 5.5%보다 증가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러나 각종 지표는 오히려 악화됐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이달 101로 이 총재가 취임하기 직전인 지난해 3월의 108보다 낮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분기 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 1.1%였지만 이 총재 취임 후 0%대가 이어졌다. 가계부채도 지난해 3월 1024조원에서 12월 1088조원으로 늘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
“향후 기준금리는 성장·물가에 초점”… 취임 1주년 韓銀 이주열 총재
입력 2015-03-31 0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