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이혼·가출·조건만남… 어린 소녀 짓밟은 어른들

입력 2015-03-31 02:42
‘며칠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충북의 한 도시에 살던 A양(14)은 지난해 11월 이런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넉 달 만인 지난 26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모텔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충청도 소녀가 연고도 없는 서울의 모텔에서 목이 졸려 숨진 배경에는 부모의 이혼과 자녀의 방황, 가출 소녀들을 유혹하는 성매매 알선조직, 이들을 통해 욕정을 채우려는 성매수 남성들의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A양은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언니와 함께 살았다. 사춘기에 닥쳐온 가정의 변화에 방황했고 결국 가출했다. 집을 나온 뒤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의지할 곳을 찾다가 박모(28·구속) 최모(28·구속)씨 등을 만났다. A양 같은 소녀들에게 ‘조건만남’이란 성매매를 알선하는 이들이었다. 박씨 일당은 A양과 함께 생활하며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모집한 남성과의 성매매를 알선하고 중간에서 돈을 챙겼다. 박씨는 경찰에서 “성매매 대금의 70%를 A양에게 줬다”고 진술했다.

이들은 26일에도 ‘빠르게 뵐 분’이란 제목으로 채팅방을 만들어 성매수 남성을 찾았다. 오전 6시였지만 12명이나 되는 남성이 연락해 왔다. 그중 김모(38)씨를 연결해줬다. 오전 6시43분 김씨와 함께 모텔로 들어간 A양은 한참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박씨는 낮 12시10분 모텔 방문을 따고 들어가 침대에 누운 채 숨져 있는 A양을 발견했다.

서울관악경찰서는 29일 살인 혐의로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CCTV 분석 결과 김씨와 A양이 객실에 들어간 뒤 출입한 사람이 없는 점, 오전 8시40분쯤 김씨 혼자 방에서 나온 점 등으로 미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김씨는 성매매 시간을 연장하려다 A양과 실랑이를 벌였다고 한다. 자신에게 결벽증이 있고 성기능에 다소 장애를 겪고 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성매수 사실을 인정했지만 살인 혐의는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방에서 나올 때 A양은 옷을 갈아입고 휴대전화로 모바일 쇼핑을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30일 “A양 휴대전화는 인터넷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며 “현장에서 채취한 유전자로 대조 작업을 벌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