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사고 1년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와 유병언 일가가 최근 서둘러 해치운 일이 있다. 바로 언론에 재갈을 물린 일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보도로 인한 분쟁조정 사건은 1만9048건이 접수됐다. 전년도 2433건의 8배에 달한다. 가관인 것은 총 조정 사건의 84.6%(1만6117건)를 구원파와 유병언 일가가 230여개 매체를 상대로 신청했다는 점이다.
중재위는 매체별 일괄 신청을 희망했지만 구원파 측은 개별 기사 단위로 융단폭격하듯 조정 신청을 했다. 국민일보와 자회사(쿠키뉴스) 상대로는 총 418건의 기사를 문제 삼아 거액의 손해배상과 함께 정정 및 반론보도를 신청했다.
조정사건 폭탄에 굴복, 나쁜 선례 남겨
언론사들의 ‘위축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불과 4∼5개월 만에 구원파 사건의 94.6%(1만5245건)가 ‘취하’로 종결된 것이다. 구원파 측이 마련한 ‘(일괄) 정정 및 반론보도문(이하 보도문)’의 골자에 동의한 매체들에 ‘취하’라는 선처(?)가 베풀어진 모양새다. 상당수 매체들은 구원파에 맞설 엄두도 못 내고 제풀에 굴복하고 만 것으로 전해진다. 이른바 ‘귀차니즘’이 작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귀차니즘이 가져올지도 모를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번에 홍역을 치른 언론사들이 당장 세월호 사고 1년을 맞아 소신껏 정론을 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으로 힘 있는 권력자나 돈 가진 기업이 구원파의 선례를 따를 경우 뒷감당이 더 걱정스럽다.
304명의 희생자와 실종자를 낸 세월호 사고가 유병언 일가와 관련 있는지 여부는 당시 최대의 공적 관심사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이번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 유병언 일가”라고 규정했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구상권 행사를 천명했다. 검찰은 사고 나흘 만에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를 겨냥한 특별수사팀을 가동했고 한순간에 공적 인물 반열에 오른 유병언 부자 검거에 6억원의 현상금이 내걸렸다. 전국적인 반상회가 개최되고 군대까지 동원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었다.
그 당시 언론은 모든 의혹을 파헤쳐야 할 의무가, 구원파 측은 소상히 소명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보가 있었다면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 태도와 함께 구원파의 방어적 비밀주의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국민적 관심이 멀어진 사이 공익보도의 전체 맥락이 도외시되고 일개 집단이 언론중재위를 볼모 삼아 언론에 족쇄를 채운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구원파가 제시한 보도문은 그야말로 항복문서다.
보도문에는 ‘기독교복음침례회는 확인한 결과’와 ‘밝혀왔다’ ‘알려왔다’는 등의 표현이 섞여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구원파 측이 일방 확인한 것으로 보도를 반박(정정)할 증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매체는 (구원파 측이) “사건을 여론재판으로 몰고 간 세월호 사고 관련 보도 행태를 돌아보고…”라는 의견을 보내왔다며 그대로 싣기도 했다.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넘어 양심의 자유를 건드리는 영역일 수 있다.
교리 관련 구원파 주장 인정 못해
일괄 보도문을 통해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가 특별히 노린 것은 두 가지로 보인다. 유병언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가 아니고 구원파는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보도문은 구상권 소송에서 유리한 증거이자 인터넷상에서 사이비 아닌 정통 기독교라고 선전할 문서로 활용될 빌미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국민일보는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의 조정 신청을 전면 거부했다. 특히 구원파의 교리 부분은 기독교계를 대변하는 본보의 창간 이념과 상충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재호 편집국 부국장 jhjung@kmib.co.kr
[돋을새김-정재호] 언론에 재갈 물린 구원파
입력 2015-03-31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