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공직자윤리법 퇴직자, 외국 로펌行 못 막는다

입력 2015-03-31 02:46
‘관피아’(관료+마피아)를 개혁하겠다며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에 구멍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내년부터 한국 설립이 허용되는 외국계 법무법인(로펌)에 퇴직 공직자가 재취업할 때 개정법상으로도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로펌은 역차별 가능성도 제기했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지난해 12월 개정돼 31일부터 시행되는 공직자윤리법은 퇴직 공직자의 무분별한 재취업을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4급 이상 공무원이 재취업할 경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재취업 대상 기업·로펌 등의 규모 기준을 전년도 외형거래액(일종의 매출액) 15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낮춰 제한 대상 기업 등이 늘었다. 또 공무원이 변호사, 회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로펌 등으로 재취업할 때 취업 심사를 면제해줬으나 재산 공개 대상 공무원의 경우엔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도 심사를 받게 했다.

그러나 강화된 공직자 재취업 규정이 내년부터 개방이 시작되는 외국 로펌 재취업에는 무용지물이다. 내년 7월부터 유럽연합(EU) 국가들의 로펌, 2017년 3월부터는 미국의 로펌이 한국에서 국내 로펌과 합작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이 때가 되면 외국 로펌은 국내 변호사뿐 아니라 퇴직 공직자도 고용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에서 신설되는 외국 로펌의 경우 공직자윤리법에서 취업을 제한하는 기준인 전년도 외형거래액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4급 이상 공무원 또는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재산 공개 대상 공무원이 퇴직 후 바로 외국 로펌에 재취업할 경우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한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30일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퇴직 공직자들이 재취업 경로로 외국계 로펌으로 눈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非)법조인 공직자 중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로펌에 재취업한 경우는 31건이다.

국내 로펌은 역차별 가능성도 제기했다. 장재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큰 이슈는 아니지만 외국계 로펌이 국내에서 네트워크를 늘리기 위해 퇴직 공직자 영입을 시작한다면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상훈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공직자윤리법 수정이 없다면 국내 로펌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며 “신설 외국 로펌의 경우 최소 3년간은 공직자 재취업을 제한하는 등의 법 개정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공직자윤리법을 담당하고 있는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외국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있지 않다”며 “법률시장 개방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 논의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