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의 행방

입력 2015-03-31 02:52

한글의 창제 원리가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는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려고 고대 문자모방설 등 다양한 가설들을 집요하게 제기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발견되면서 일제의 ‘꼼수’는 물거품이 됐다.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예의(例儀)와 해례(解例)로 나뉘어 있다. 예의는 세종대왕이 직접 썼는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집현전 학사들이 쓴 해례에는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례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예의는 ‘세종실록’에 실려 전해져 왔지만, 해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1940년 그 신비를 비로소 드러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한 것이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이 해례본(간송본)은 1962년 국보 제70호로 지정됐고, 9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2008년 8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경북 상주시에 사는 배모씨가 작성한 글인데 “집에서 고서적 한 권이 나왔는데 문화재로 신청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세상에 딱 한 본인 줄 알았던 훈민정음 해례본이었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이 ‘상주본’은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자취를 감췄다. 배씨와 상주본을 도난당했다는 골동상 조모씨간 민·형사소송전이 벌어진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민사소송에서는 져 소유권이 조씨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배씨는 상주본을 내놓지 않고 끝까지 숨겼다.

7년째 침묵으로 일관했던 배씨의 집에 지난 26일 불이 나면서 상주본의 행방이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30일 현장 감식에서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탔을 것”이라며 소실 가능성을 처음 언급해 충격을 줬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책임은 배씨는 물론 국보급 문화재를 이렇게까지 방치한 문화재청에도 있다. 문화재청의 존재 이유가 귀중한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