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니까 쉬엄쉬엄 찍자? 완전 착각이었죠”영화 '장수상회'로 4년 만에 관객 만나는 강제규 감독

입력 2015-04-01 02:39
소소한 웃음과 가족애를 담은 신작 ‘장수상회’를 들고 4년 만에 복귀한 강제규 감독. 블록버스터 대작을 잇따라 연출했던 그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병주 기자
강제규(53) 감독이 돌아왔다. ‘마이웨이’(2011·누적관객 214만 명)의 흥행 실패 이후 4년 만이다. ‘쉬리’(1999·620만 명)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1174만 명)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탄생시킨 그가 새로 내놓은 작품은 70대 노인의 로맨스를 그린 ‘장수상회’다. 남북 대치 상황의 이데올로기와 6·25전쟁의 상처 등 묵직한 주제의 영화를 찍은 그가 부드러운 작품을 촬영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강 감독을 만났다. 큰 영화 찍다가 작은 영화 찍은 소감부터 물어봤다.

“무거운 영화 하다가 말랑말랑한 거 하니까 쉬엄쉬엄 해도 될 줄 알았죠. 근데 웬걸, 완전 착각이었어요. 크든 작든 영화는 같은 거구나, 내가 옅은 생각을 했구나 싶었죠. 스케일이 큰 것보다는 울림이 큰 영화를 해보려던 차에 ‘장수상회’를 만났어요.”

대작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주변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얘기다. 몇 년 전 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하시는 아버지에게서 모티브를 얻었다.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과 닮았다. 이에 대해 강 감독은 “‘국제시장’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고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장수상회’는 초반에 소소한 웃음을 던지다 후반에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감독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 그 중심에는 배우 박근형과 윤여정이 있다.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두 분이 떠오르는 거예요. 까칠하면서도 순박한 성칠 역은 박근형 선생님이 딱이고, 칠순 나이에도 소녀처럼 뛰어다니고 웃는 금님 역은 윤여정 선생님 말고는 생각지도 않았지요.”

무뚝뚝하고 고집 센 70세 연애 초보 성칠과 소녀 감성을 가진 꽃집 여인 금님이 알콩달콩 주고받는 러브스토리는 뜻밖의 반전을 준비한다.

강 감독은 “이건 절대 비밀이다. 관객들이 극장에서 확인하고 감동 받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 노년층의 로맨스에 국한되지 않고 세대를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가족사랑 얘기”라고 강조했다.

반전이 드러나기까지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는 감정을 조절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성칠과 금님의 비밀을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수위를 정해야 하는 게 힘들었어요. 감정의 보폭이 과잉이어서도 곤란하고 못 미쳐도 안 되니까요. 우리는 사실 다 알면서 짜고 가는 거지만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눈치를 챈다면 이건 완전히 망하는 거죠.”

강 감독의 전작들은 다소 보수적이다. 이번 영화도 어른 세대를 이해해달라고 한다. “세대 간의 벽이 많고 담도 너무 높은 거 같아요. 젊은 세대와 중장년 세대가 어우러져 서로를 들여다보자는 겁니다. 대화를 해보지도 않고 편견이 만연해 있어요. 우리나라가 원래 그런 나라는 아니잖아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소통의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강 감독은 세대 간의 이해 코드로 아버지와 딸의 담배 장면을 예로 들었다.

“고교생 딸이 아버지의 담뱃갑에서 몇 개비씩 훔쳐가거든요. 비행 청소년으로 보이기 십상이죠. 하지만 친구의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숨진 것을 보고 담배를 덜 피우게 하려고 그랬다는 사실이 드러나요. 젊은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속마음이 깊은데 잘 모르고 이래라 저래라 요구만 하는 거죠.”

‘장수상회’의 제작비는 37억원이다. 280억원이 투입된 ‘마이웨이’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흥행에 대한 욕심이 없을까.

“전에는 얼마 투자했으니 얼마 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손해만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손익분기점이 180만 명인데 글쎄요? 영화는 까 봐야 아니까, 관객들의 입소문에 달린 거죠. 재미있더라고 홍보 좀 많이 해주세요.”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