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상춘 (11) 3번의 위기서 얻은 좌우명 ‘신뢰 경영·기도하라’

입력 2015-04-01 02:24
1989년 일본을 방문해 기계전시박람회장을 둘러보는 이상춘 이사장(왼쪽 세 번째).

유서를 쓰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기도를 한 이날, 난생처음으로 강한 성령체험을 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가운데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동시에 주님이 새 길을 열어주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왔다. 이날 나는 인간의 몸에서 이처럼 많은 눈물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정신을 차리니 하나님이 주신 귀한 목숨을 끊고 그저 고통에서만 벗어나려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서너 시간을 기도하며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눈물의 기도를 드린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감사와 기쁨이 가슴에 가득하며 어떤 상황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가득 차올랐다. 자정쯤 집에 들어간 나는 신기하게도 푹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매일 밤 고통으로 꼬박 새우다시피 했던 내겐 놀라운 변화였다. 성령이 주시는 은혜가 분명했다.

다음 날 아침 거래은행을 다시 찾았다. 지점장과 단둘이 마주하게 되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지점장님 저 지금 서른여섯 살입니다. 힘들게 왔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저는 끝입니다. 한번 더 기회를 주세요. 사실 어제 자살을 하려다 한번 더 지점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이 사장님 같이 성실하신 분을 도와드리지 않으면 어느 분을 도와드리겠습니까. 이 대출은 제 목을 걸고 해드리는 것입니다. 사업 잘해서 제가 사표내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당시 무담보로 2억4000만원을 빌려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난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 지점장의 마음을 움직여 내게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임을.

은행 불만 껐다고 다 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믿고 재료를 준 재료상들을 찾아가 어음을 미뤄 달라고 했다. 모두 참아 줄 테니 열심히 해보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냉혹한 사업세계에서 아직 훈훈한 정이 남아 있었다.

나는 도와준 지점장의 옷을 벗게 만들 수 없다는 사명감으로 더 열심히 일했고 결국 그분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 줄 수 있었다.

세 번의 사업위기를 겪으며 배운 것이 많았다. 사업의 세계를 알고 은행을 알고 유통구조를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어음으로 인한 위기를 두 번 다시 겪지 않겠다는 표시로 당시 내가 갖고 있던 부도수표 39장을 ‘거안사위 유비무환(居安思危 有備無患)’이란 글씨와 함께 표구한 뒤 책상 뒤편에 걸어두고 있다. ‘편안히 살 때 위태로움을 생각해 미리 준비하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이 문구는 이후 내 사업좌우명이 되었다. 교회생활에 다시 열심을 냈다. 하나님께서 암흑 가운데 빛을 비춰 길을 열어 주셨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기에 그동안 나태했던 신앙을 다시 세우고 바로잡으려 애썼다.

하청시스템이 무너진 상태라 공장에 있던 기계들을 팔아 은행이자를 내가면서 가와구찌상의 소개로 일본 ‘오찌아이(落合)’라는 부품생산회사를 소개받았다. 이곳 한국 총판대리점이 되어 기계부품판매업에 뛰어들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매년 3∼4곳씩 전국 대도시 10곳에 매장을 냈다. 이 사업이 대박을 쳤다.

일본식 경영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원칙적인 부분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그들은 독점거래에 대한 신의를 지켜주었다. 이 대리점 사업은 내 사업규모를 한 단계 올려주었다. 빚을 모두 다 갚아 신용은 회복했지만 엔화가 점점 오르면서 일본 제품 경쟁력이 떨어졌다. 난 인천 남동공단에 1000평의 공장을 마련하고 수입대체 국산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