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지만 실제로는 배우가 영화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특정 역할을 오리지널 아닌 다른 배우가 맡았다고 가정할 경우 영화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우선 생각나는 사례가 ‘벤허’다. ‘벤허’ 하면 찰턴 헤스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적역이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당초 벤허 역은 록 허드슨이나 버트 랭카스터, 아니면 말론 브랜도가 맡을 뻔했다. 세 사람이 모두 거절하는 바람에 헤스턴에게 역할이 돌아갔던 것. 만일 허드슨이 벤허였다면? 그가 눈물짜내기 멜로드라마나 달달한 성인용 코미디로 이름을 날렸음에 비추어 상상이 잘 안 된다.
또 전설이 된 고전 ‘카사블랑카’는 어떤가. 제작자 핼 월리스는 주인공으로 험프리 보가트가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만약 레이건이 보가트를 대신했더라도 ‘카사블랑카’가 지금과 같은 영화사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을까?
반면 이 사람이 맡았어도 괜찮았겠다 싶은 사례도 있다.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워낙 앤서니 홉킨스가 기막히게 연기하는 바람에 이젠 누가 그 역할을 해도 안 될 것 같지만 홉킨스가 이 역을 맡은 건 숀 코너리와 제레미 아이언스가 먼저 출연 제의를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코너리표, 혹은 아이언스표 렉터도 멋졌을 것 같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13) 캐스팅 秘史
입력 2015-03-31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