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빗속에서도 수십만명의 싱가포르 국민들은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마지막 배웅길에 나섰다. 국회의사당에 안치돼 있던 리 전 총리의 시신은 29일 낮 12시30분(현지시간) 예포 21발과 함께 운구가 시작됐다. 고인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 현 총리 등 가족과 정부 주요 관료가 그 뒤를 따랐다.
시청, 파당광장, 싱가포르 콘퍼런스홀 등을 거쳐 장례식장인 싱가포르국립대 문화센터(UCC)까지 15.4㎞의 운구 행렬 주변에는 수많은 시민이 몰려 ‘리콴유’를 연호하며 애도했다. 교사인 조엘 림(35)은 AFP통신에 “역사적인 순간에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다”면서 “중요한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 싱가포르 국민이고 그게 바로 리 전 총리의 뜻”이라고 말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침 7시부터 와 있었다는 제니 유(58)는 “인종과 종교, 언어와 관계없이 싱가포르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장례식이 시작된 오후 2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싱가포르 전역에서 1분간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장례식은 리 총리를 시작으로 토니 탄 대통령, 고촉동 전 총리, 옹팡분 전 장관 등 10명이 추도사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리 총리는 추도사에서 “우리 국민은 아버지를 잃었다”며 “싱가포르를 리 전 총리가 실현하려고 애쓴 이상을 반영하고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도시로 만들자”고 말했다. 리 총리는 추도사 낭독 도중 눈물을 참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다.
장례식에는 30년간 같은 구두가게만 이용하고 낡은 셔츠도 즐겨 입었던 리 전 총리의 검소함을 기억하는 단골 구두가게 주인과 운전기사 등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장례식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돼 해외 거주 싱가포르인도 추모 물결에 동참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리 전 총리의 시신은 만다이 화장장으로 옮겨져 가족과 측근들만 참석한 가운데 화장됐다. 리 전 총리가 좁은 땅을 가진 싱가포르의 현실을 감안해 “내가 죽거든 살던 집도 허물고 나도 화장하라”는 유언을 남긴 데 따른 것이다.
의사당 추모소에는 전날까지 45만명가량이 다녀간 것을 비롯해 전국 18곳에 설치된 추모소에 150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찾았다. 싱가포르 정부는 한때 의사당 조문객이 계속 불어나 대기 행렬이 의사당 옆 파당광장을 지나 지하철 시청역까지 뻗어나가자 안전을 이유로 더는 줄을 서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온라인상 추모 사이트에도 85만명 이상이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은 쇼핑·외식업계의 대목인 휴일이었지만 메트로, 탕스 등 시내 일부 대형 상가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동남아 최대 카지노업체 중 하나인 젠팅싱가포르는 장례식이 열린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카지노 영업을 중단했다. 싱가포르민간항공국(CAAS)은 운구 행렬의 상공에서 소형 무인 항공기의 운항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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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30 02:44 수정 2015-03-30 0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