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7일자(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의 희생자’라고 표현한 것은 그동안 한국과 중국의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위안부에 관한 한 그의 근본적 인식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게다가 주변국의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이런 표현을 ‘대놓고’ 거론한 것은 ‘미·일 간의 신(新)밀월 시대’에 기대 위안부 강제동원의 역사적 사실을 희석시키는 작업을 더욱 노골화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WP 인터뷰를 들여다보면 아베는 굳이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어도 됐다. 질문자 역시 ‘위안부’라는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고 ‘당신은 (과거 역사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냐’고만 물었다.
이에 아베는 처음에는 자신의 내각은 1995년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村山) 담화, 또 비슷한 내용의 2005년 고이즈미(小泉) 담화를 계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안부 동원에 대한 사죄를 담은 1993년의 고노(河野) 담화도 재검증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아베는 그런 뒤 위안부 문제를 스스로 언급하며 문제의 표현을 꺼냈다. 그는 “‘진신바이바이(인신매매·人身買賣)' 희생자인 위안부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my heart aches)”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아베는 지금까지 위안부 동원 주체가 정부가 아닌 민간업자들이었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런 인식을 재차 밝힌 것이다. 인신매매가 주로 민간업자가 벌이는 일이라는 아시아적 인식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human trafficking’이라는 말 속에 강제동원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미국 정가에는 마치 강제동원을 인정한 것처럼 비쳐질 수도 있는 표현을 골라냈다는 분석도 있다.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 역시 아베 정권이 정부 차원의 책임을 미룰 때 쓰는 전매특허격인 표현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아베 “위안부는 인신매매” 본질 흐리기… 강제동원 사실 희석 노골화
입력 2015-03-30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