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도 출신 브랜드 ‘무홍’ 패션디자이너 김무홍 “디자인 낯설어서 먹히나봐요”

입력 2015-03-31 02:07

“‘사람들이 자꾸 네 옷을 찾는다. 옷에다 마약 묻혀 놓았느냐’고 하더라고요.”

서울 강남역 부근 커피숍에서 지난 28일 만난 패션 디자이너 김무홍(34·사진)은 프랑스의 세계적인 편집숍 ‘레클레르’ 바이어가 했다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흐흐 웃었다. 레클레르는 ‘레클레르가 주문했다’는 소문만으로도 다른 바이어들이 그 디자이너를 눈여겨볼 만큼 영향력 있는 편집숍이다. 아방가르드한 옷을 주로 취급하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유명 편집숍 ‘안토니올리’ 등 20여 편집숍에서 그의 브랜드인 ‘무홍’을 주문해가고 있다고.

그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쇼를 했다. ‘2015 가을 겨울 서울패션위크’에서

패션과 인문학의 소통이라는 모티브로 남성복과 여성복을 무대에 올렸다. 흑백, 회색, 블루 등 절제된 색상으로 실루엣을 강조한 옷들이었다. 그는 “조화와 대립의 과정을 통해 병렬이라는 콘셉트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모티브도 콘셉트도 쉽지 않다. 특히 남성복은 여간한 남성들은 입을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은 디자인들이었다. 치마 같은 옷들도 더러 있었다. 김씨는 유럽에서 ‘무홍’이 팔리는 이유가 바로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이어들이 “이런 디자인은 너밖에 못하기 때문에 사간다”고 한다고. 서울에서도 15건이나 상담을 했고, 9건은 벌써 계약까지 완료했다.

국내에도 마니아가 생기고 있지만 서울 반포에 있는 자신의 아뜰리에에서만 무홍을 판매하고 있다. 백화점 중심으로 돌아가는 국내 패션시장은 사이즈 고루 갖춰야 하고, 재고도 책임져야 하니 섣불리 달려들기가 어렵다고. 무홍은 디자인과 패턴은 그가 하고, 샘플제작에 보조까지 총 4명이 만들고 있다.

“이번 패션위크에 참여한 디자이너들 중 패션에 관한한 가방 끈이 가장 짧다”는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영국의 신흥명문 워릭대학에서 2012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노팅엄 대학에서 박사 후 연구직을 제의받았던 정치학도였다. 패션은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디자인과 패턴 작업을 척척 해내는 것은 그의 어머니 덕이다.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패션디자이너 문영희씨가 그의 어머니다. 그는 “어머니의 작업실에서 놀면서 저절로 체득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주류가 될 때까지 노력하겠지만 주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겠다”는 그는 내년에는 파리컬렉션 무대에 도전할 계획이다. 요지 야마모토 같은 세계적인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를 한국도 갖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김혜림 선임기자